희망이 없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미래를 밝게 바라보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다산의 글을 읽다보면, 다산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용기를 지닐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감탄을 감출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인생의 막장에 이른 감옥생활, 희망이라고는 엿볼 수 없는 그 긴긴 유배생활, 잘 풀리리라는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에도, 다산은 용기를 잃지 않고 학문연구에 채찍질을 가했고, 아들들에게도 절대로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거듭 독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신유교옥(辛酉敎獄:1801)이라는 그런 혹독한 화란을 당하여 두 형님과 자신, 매형 이승훈 등 온통 가족 전체가 감옥에 갇히고, 재판 결과 형님 한분과 매형은 참수를 당하고 두 형제는 돌아올 기약 없는 먼먼 곳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마흔의 나이에 첫 번째의 귀양지는 경북 포항 곁의 장기현이라는 곳입니다. 생애에 가장 불행하던 그때 지었던 다산의 시를 읽어보면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용기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옛사람 생각하다보면 한유(韓愈)라는 분 생각나네 我思古人思韓愈
불교사상 공격한 죄로 남방으로 귀양갔다오 坐攻佛法謫南土
한유는 8천리 먼곳으로 귀양갔는데 韓愈八千餘里謫
그분은 천리, 나는 백리이니 옛과 지금의 차이네 彼千我百殊今古
이제는 떠돌이 신세의 슬픔일랑 말하지 말고 自今勿言萍梗悲
옛날 분 생각하며 사람 그릇이나 키워야겠네 我思古人恢器宇 
  (我思古人行)

참으로 힘들고 괴로우며 어려울 때, 자신의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을 딛고 일어섰던 옛사람을 생각했던 것, 그것이 바로 다산의 용기입니다. 당나라의 대문호 한유는 불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8천리의 먼 남방으로 유배를 갔는데, 자신은 겨우 서울에서 8백리 떨어진 장기로 귀양왔으니, 고통의 크기로는 비교가 안 된다는 의미를 시에 담은 것입니다. 극도의 고난에 처해서, 더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옛 어른들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고난을 극복해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불행을 당하고도 좌절할 줄 모르던 다산의 모습을 회상해보면, 우리도 불행을 극복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던 유배 초기의 강진 시절, 주막집 골방에 거처를 정하고도, 비탄에 빠지지 않으며, “하늘이 나에게 겨를을 주었다.

이제부터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자!” 라고 결심하였듯이, 그는 오뚜기처럼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용기의 사나이였습니다. 삶이 고달프거나 힘들 때, 일이 뒤틀려 어려움에 봉착할 때는, 옛날의 훌륭한 분들의 지혜와 용기를 생각하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아사고인(我思古人)’네 글자의 묘미를 잊지말고 절망에서 지혜와 희망을 찾았던 다산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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