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제석원 식당의 “백반정식”

[맛집/남도방송] 전라도 사람들이라면 타 지역에서 지인들을 만나 때가 되어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으레히 하는 말들이

“전라도 분들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저희 지역은 음식이 전라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음식이 입맛에나 맞을려나 모르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받게된다.

그러다 특정 메뉴를 정하지 못하고 가장 무난한 고기 집을 향하기 일쑤다.

고기의 맛 차이는 지역별로 큰 오차가 적기 때문에 하는 선택이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지역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더더욱 난감해진다.

“전라도 음식은 저렴하면서도 푸짐하다. 그리고 맛까지 있다” 라는 대 전제를 품고 온 그들은 분명 전라도 사람들에게 약간의 부담은 사실이다.


지역에서 잘 알려진 특미도 좋지만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는 접대의 자리가 아닌 친밀의 만남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식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맛 난 고기도 한 두 번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필자처럼 외식이 잦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음식은 시레기 된장국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지은 하얀 밥이 최고의 밥상이다.

그런데 똘망똘망 까만 눈동자의 그들을 모시고 나는 어데로 가야하나?

푸짐한 한상차림 9첩 반상.

어서 오라는 짤막한 인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말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음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상 양쪽 끝에서부터 일사분란하게 척척 줄을 맞추며 늘어선다.

양 쪽 7접시씩 마주보고 자리를 잡더니 중앙의 빈 자리에 커다란 접시들이 또 척척 차례로 자리를 잡는다.

무려 20가지의 반찬이 도열을 받는다.

요즘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해병대가 아닌 해변대(?)출신이어서 상차림이 줄을 잘 선다는 농담을 던진다.

국, 찌개, 조림의 기본 밥상에 나물류, 젓갈류, 구이류를 언뜻 세어보니 9첩 반상에 가깝다.

외상(독상)이 아니라 첩 반상이라 일컫기는 뭐하지만......

고구마대, 깻순, 고추잎 등의 나물에 간장게장, 고막무침이 보이고 오징어 젓갈에 무 장아찌에 오이피클, 겉절이에 묵 반찬이 보인다.

이렇듯 14가지의 찬에 된장국, 계란부침, 가오리찜, 불고기, 도다리튀김 등의 주요리가 중앙을 차지한다.

자칫 상차림이 가짓수에 치중하다 보면 상위에 그득하고 수북함에도 밥 한술 뜨고 젓가락을 들었을 때 마땅함이 없어 몇 번을 망설일 수 있다.

하지만 제석원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요리와 찬 들의 맛과 간이 자꾸 젓가락을 먼저 유도하고 그 간간함이 오히려 밥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찬을 위한 하얀 쌀 밥인 것이다.

전라도는 찬이 경쟁력이다.

풍부한 농산물과 지척의 거리에서 발달한 수산물은 전라도 음식을 발달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농산물과 다양한 수산물은 사시사철 풍요로웠고,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환경은 계절별 별미를 만들어 냈다.

홍어의 유통을 위해 영산강을 오르다 홍어의 삭힘이 발달되었고 내륙에서 생선의 보관을 위한 방법으로 안동의 간 고등어가 발달 되었다.

나주에는 축산이 발달되어 곰탕과 오리요리가 발달되었고 익산을 비롯한 일부지역에서는 닭요리가, 통영에서는 굴요리가, 강원도에서는 두부와 감자요리가 발달을 했다.

이처럼 특수한 지역환경은 특미를 만들어 내고 지역민들의 생활환경은 별미를 만들어 낸다.

산, 들, 바다를 다 가진 순천의 지역 환경 역시 특이하다.

제철에 흔한 야채들을 생으로, 데쳐서, 삶아서, 말려서, 조려서 먹고 소금으로, 간장으로, 된장 고추장으로, 젓 장으로 간을 맞춰서 먹는다.

많이 잡히는 생선으로 활어회, 선어회, 무침회로 먹고 구워서, 말려서, 조려서, 탕으로, 섞어서 등 온갖 방법으로 식도락을 한다.

이 지역민들의 생활이 하나의 특수성이 아닐까?

그래서 음식이 발전되고 그 결과로 어느 집이든 무작위로 방문을 해도 맛없는 집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12첩 반상으로 즐기는 고급 한정식도 자랑스럽지만 일반적인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가정식 백반정식 또한 지역의 충분한 자랑이고도 남음이 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화려하게 모양을 낸 상차림은 아니다.

집에서 가족들이랑 밥 먹는 그러한 상차림이기에 오히려 익숙하다.

집 된장일 듯한 걸죽한 된장국에 입맛을 만들고 달콤하고 보드라우면서 간간한 불고기에 밥숟갈을 키운다.

재래식 간장게장에 밥을 슬쩍 비벼먹고 톰톰한 다리살을 들고 쪽쪽 빨아 들이킨다.

담백한 들깨양념 나물에 입 맛을 정리하고 깔끔한 소금무침에 향을 느낀다.

통통한 도다리 튀김에 흐뭇함을 느끼고 오돌하고 쫄깃한 가오리찜에 반주를 들이킨다.

어느 것 한가지인들 손이 안간 찬이 없고, 밥은 어느새 2번째 공기가 벌써 비워져 가고 있다.

배부름에 절로 터지는 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든든한 뱃심으로 마무리 인사를 나눈다.

“아주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밥상           이 기철/1995

산 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 위에 놓이는 수저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

아침마다 사람들은 문 밖에서 깨어나
풀잎들에게 맡겨둔 햇볕을 되찾아 오지만
이미 초록이 마셔버린 오전의 햇살을 빼앗을 수 없어
아낙들은 끼니마다 도마 위에 풀뿌리를 자른다

靑果 시장에 쏟아진 여름이 다발로 묶여와
풋나물 무치는 주부들의 손에서 베어지는 여름
채근의 저 아름다운 살생으로 사람들은 오늘도
저녁으로 걸어가고
푸른 시금치 몇 잎으로 싱싱해진 밤을
아이들 이름 불러 처마 아래 눕힌다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전신을 내려놓은 빗방울처럼
주홍빛 가슴을 지닌 사람에게는 未完이 슬픔이 될 순 없다

산 자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솥에 물 끓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음식점 정보: 순천시 별량면 금치리 1307, 061)858-7090, 백반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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