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실학기행이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수요일 새벽 서울에서 모여, 남양주시 다산유적지로 출발하는 우등고속 2대의 관광버스에는 56명의 실학 애호자들이 좌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아침 9시도 안된 이른 시간에 실학박물관 강당에 모여 발대식을 치루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조선 실학의 세 할아버지는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임을 설명해주고 먼저 다산선생의 묘소로 옮겨서 머리 숙여 목례를 올리고 실학기행의 출발을 신고했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다산선생의 허락을 받은 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남도 천리의 먼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내리던 가랑비도 그치고, 뜨거운 햇볕이 없어 여름날씨로는 활동하기 쾌적한 날씨에다, 긴 여행을 떠난다는 흥분으로 참가자 모두가 상기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여행객은 주로 교사와 교수들이었으나, 특별한 직업의 실학애호자도 몇 분 계셨습니다. 부산시 소방청에 근무하는 소방관, 부산지방철도청에 근무하는 기관사, 신문기자 몇 분 등 다양한 남녀들이 모여 다산이 설계했던 수원 화성부터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 화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화성박물관 관장으로 근무하는 이달호 박사를 초청하여 성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에게서 설명을 듣는 재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느꼈습니다. 특히 성에 얽힌 비사를 듣는 것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화성 곁의 식당에서 푸짐한 수원 갈비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그길로 안산으로 달려 성호기념관과 성호선생 묘소를 둘러 보고, 전북 부안의 반계선생 유적지인 반계서당까지 샅샅이 구경하고 목포에 도착해 1박을 했습니다. 다음날 쾌속정으로 멀고 먼 바다를 건너 흑산도로 갔습니다. 손암 정약전 선생의 유배지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적려유허비 앞에서 그들의 참담한 유배생활에 가슴 아픈 심정을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손암과 다산 형제는 세상에 소문난 형제지기였습니다. 동급의 학문수준, 동급의 개혁의지, 동급의 애국심과 민족애를 가졌던 두 형제가 함께 모여 앉아 학문적 토론과 시국담을 나눴다면, 얼마나 큰 생산적 대화가 가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정치는 그들 형제를 강진과 흑산도에 헤어져 살게 하는 비정한 죄악을 짓고 말았습니다. 흑산도의 「사촌서실」(정약전의 서당) 앞에 서니 가슴에 솟아오르는 슬픔의 하나가 그들의 기나긴 헤어짐과 서로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사념이었습니다. 당파가 그렇게 무섭고, 정치적 라이벌이라는 것이 그토록 가혹하게 서로에게 정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들 형제에 대한 생각을 하면 비애감이 가슴 가득 번질 뿐입니다.

흑산도 일주 관광과 선유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섬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목포로 다시 나와 강진의 다산초당과 해남의 녹우당을 관람한 뒤 밤 늦게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3일간의 보약 덕택으로 피로도 잊었다는 여행객들의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사구시, 청렴정신, 공정균등의 실학정신을 반드시 되살려 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이념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실학정신만 제대로 살리면 나라는 걱정없다는 것에 기행 참가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의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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