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말이지만 계급사회나 신분사회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한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그렇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형이 어질고 훌륭한 경우, 의당 그 아들이나 아우도 어질거나 훌륭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부터 ‘의불삼대불복약 (醫不三代不服藥)’ 이라하여 3대 4대 내려오는 비법을 전수해오는 의원이라야 참다운 의원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문장역연(文章亦然)’이라하여 문장도 3대 4대 내려오는 집안이라야 제대로 된 문장가가 나올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안산(安山)에 있는 성호 이익선생의 유물관과 묘소를 탐방한 적이 있습니다. 성호 이익은 다산이 가장 숭앙하던 선배 학자였고 또 롤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성호는 제자들이 많아 ‘학해(學海)’를 이뤘다고 알려졌듯이 그 집안의 자질제손(子姪諸孫) 또한 모두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로서 출중한 학문가(學問家)를 이룬 집안이었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의 글, 「발이만경봉사초(跋李萬頃封事草)」에서 어진 아버지 아래 어진 아들이 있음을 명확하게 증명해주었습니다. 성호선생의 아들 이맹휴(李孟休 : 1713-1751)는 영조 때에 대책(對策)으로 장원급제하여 한성부 주부를 거쳐 만경현감(萬頃縣監)을 지낸 당대의 석유(碩儒)였습니다. 불행히도 아버지보다 앞서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남긴 글을 읽어본 다산은 이맹휴의 탁월한 통치철학에 감복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는 글을 남겼습니다.
 
 “공은 대책으로 장원급제하여 한성부 주부에 임명되자 은혜에 감복하여 국가를 통치할 구체적 내용이 담긴 ‘봉사(封事)’를 초했다. 시대의 폐단을 논함이 강개하고 절실하여 본말(本末)을 모두 열거하여 나라에 올리려던 때에 현감으로 발령이 나서 올리지 못하고 말았다. … 공은 진실로 박학하고 문장까지 뛰어났다. 그러나 사람이란 어진 부형이 있음을 즐기나니, 성호선생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홀로 만경공이 있겠는가?” 라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성호가 있었기에 그 아들 만경공이 있었다 함을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난다’ 는 말이 봉건체제의 유지를 위한 궤변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는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훌륭하고 어진 자녀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우선 자기부터 어질고 훌륭해지고 볼 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기 때문에, 현부모 아래 현자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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