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시사(唯善是師)’라는 네 글자는 다산이 사용한 말로, 자신의 학문하는 태도이자 삶의 방향이며 사회생활의 준칙이었습니다. 악에 대한 한없는 미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착하고 바른 일이나 논리에는 반드시 본받을 일이자 원칙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의 교과서이던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새로운 주(注)를 내서 25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경학연구서를 남겼습니다. 근본 목표는 주자학(朱子學), 즉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위대한 거부로서, 실용적이고 실학적인 내용으로 새로운 경학체계를 세웠습니다.

근본적으로 다산의 학문체계는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인 내용으로만 그치는 것에는 절대로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실용 · 실천 · 행위의 개념이 담겨 있지 않는 어떤 이론이나 학설에도 그는 분명하게 반대의 입장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주자의 학설이나 이론이 옳고 바를 때는 전적으로 찬성하면서 극구 찬사를 보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정말로 옳은 것만을 스승으로 삼는 그의 학문태도가 곳곳에 역력히 드러나 있습니다.

『목민심서』 형전(刑典)의 단옥(斷獄)에, “법에서 용서하지 말라는 경우는 마땅히 의(義)로써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악을 보고도 미워할 줄 모르는 것은 인(仁)이 아니다.”(法所不赦 宜以義斷 見惡而不知惡 不仁也)라고 말하며, 너그럽게 용서만 해주는 수사나 재판을 다산은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주자가 요자회(寥子晦)란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여 주자의 생각이 얼마나 바르고 옳은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수사와 재판은 사람의 목숨에 관계되는 일이니, 온 마음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근세의 잘못된 풍속으로 음덕을 베푼다는 논의에 미혹되어 모두가 죄 있는 사람을 풀어 내보내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선량한 사람들이 호소할 데가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는 아주 나쁜 일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죄를 줄 때는 불쌍히 여기고 쾌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上同)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수사와 재판에서 참고해야 할 수사관과 재판관의 지침으로 얼마나 옳은 말인가요. 음덕(陰德)을 쌓는다는 이유로 억울한 사람들이 호소하여 성립된 재판에서, 관용을 베풀어 풀어만 준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다산은 또, “가혹한 관리로서 참혹하고 각박하게 해서 법조문만 따져서 처리하는 수사와 재판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뒤끝이 좋지 않다” 라고 말하여 몰인정한 수사와 재판도 문제 삼았습니다. 요즘 중요한 수사 재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산과 주자가 걱정했던 것에서 벗어나, 수사와 재판이 참으로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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