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 새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았습니다. 1836년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높은 인격과 탁월한 학문역량, 국가와 국민을 한없이 사랑하던 애국심에 바탕하여, 다산은 국가개혁과 부패방지를 위한 500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여 ‘다산학’이라는 학문과 사상의 체계를 마련하였습니다.

개혁과 부패방지의 간절한 대안이던 그의 학문과 사상은 그의 생전이나, 사후의 상당한 기간 동안 현실정치나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여 국리민복의 길을 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후 100년이 지난 1938년에야 그의 유저인 『여유당전서』가 간행되었고, 그로부터 74년째인 금년에야 그의 대안들을 다시 들쳐보면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혜로 여기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과 접목하여 현재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혁안과 부패방지안의 대강(大綱)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의 다산 개혁안은 국민의 의식개혁이었습니다. 생각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제도개혁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습니다.

당시의 교과서는 사서육경(四書六經)이었습니다. 공맹(孔孟)의 경서(經書)가 정주(程朱)의 성리학적 논리로 재해석된 교과서를 배우고 있는 한, 국민의 의식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다산은 240여 권의 경학연구서를 통해 실학적이고 실사구시적인 논리로 교과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관념에서 실천적 행위, 마음속의 이치를 실행할 논리로 바꾼 새로운 경학체계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개혁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박석무 이사장
    다산연구소
두 번째의 대안은 법제의 개혁이었습니다. 나라 전체를 통째로 바꿔버리자는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 즉 우리의 오래된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바꿔버리자는 논리로, 모든 법과 제도를 개혁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토지제도, 과거제도, 세금제도, 군제(軍制), 신분제도, 행정제도, 관제(官制)까지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각 부문마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대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분야가 바로 의식개혁인 본(本)에 대응하는 말(末)이라고 하여 본말(本末)이 함께 바뀌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주장했습니다.  

말과 관념으로의 착함이 아니라 착한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는 생각의 변화를 먼저 일으키고, 법과 제도를 개혁하면서 함께 가야 할 일의 하나가 마지막 일인 기술의 개발과 개혁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바뀌고 법제가 바뀌어도 국민들의 배가 부르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실제의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예론」이라는 기술개발의 원리를 앞세워, 후진의 기술을 개혁하고 또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국부의 증진이 없다면 모든 것이 무용하다는 것입니다.

북학주의의 고양이면서 국제교류를 통한 세계화 마인드와도 연결됩니다. 농기구를 개발해야 농업소득이 늘고, 병기를 개발해야만 강한 군대가 되고, 의술이 개발되어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여기면서, 소득증대와 경비절감을 위해서는 기술의 개발과 도입이 최우선의 일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실행과 실천만이 가장 높은 인격이라는 의식, 법과 제도의 개혁을 통한 부패방지의 실현, 기술의 개발과 도입을 통한 국부의 증진, 이런 세 가지의 개혁을 통해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 요순시대를 이루자는 다산의 꿈이 금년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실화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것만이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는 다산연구소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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