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보고도 미워할 줄 몰라서야
악을 보고도 미워할 줄 몰라서야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2.06.1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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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형전(刑典)」을 읽어보면 범죄의 수사와 재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원칙들이 참으로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원통한 일을 당하여 하늘에 호소해도 응답이 없으며, 땅에 호소해도 응답이 없으며, 부모에게 호소해도 역시 응답이 없는데, 홀연히 한 사람의 관원(官員)이 있어 수사와 재판 서류를 조사하여 그 뿌리를 밝혀내어 죄 없는 사람으로 풀어준다면 그런 뒤라야 수사관이나 재판관의 존엄을 알게 된다.”(斷獄)라는 대목을 읽어보면 현명한 재판의 효과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충분하게 이야기해줍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속담은 계속되고 있으며, 약하고 힘없는 사람은 언제나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고 돈 많은 재벌이나 힘 있는 사람은 아무리 큰 죄를 짓고도 아무리 무거운 형벌을 받아도 감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형집행정지나 사면으로 풀려나고, 대부분은 집행유예로 처벌이 유보되는 그런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약자들이야 사소한 사건에도 그냥 잡혀가면 구속되어 오랜 수형생활을 하지만,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힘이 세거나 권력의 실세들은 미적미적 미루면서 수사도 않고 재판도 미루는 경우가 많기만 합니다.

수사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 죄도 힘 있는 사람은 슬금슬금 넘어가면서 후속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으니, 어디에 수사의 공정성이 있다고 믿겠습니까.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법에서 용서받지 못할 경우는 마땅히 의(義)로써 결단해야 할 것이다. 악을 보고도 미워할 줄 모르는 것은 이 또한 결단력이 약한 아녀자의 인(仁)이다.

(法所不赦 宜以義斷 見惡而不知惡 是又婦人之仁也 : 단옥)”라는 부분을 보면 죄악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일이 얼마나 우유부단한 일인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권력의 주변에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거액의 뇌물 수수가 세상에 알려져 있는데, 수사를 미루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형관(刑官)의 권위를 되찾기는커녕, 권력에 소외된 쪽은 한없이 혹독하게 다루고, 권력 주변은 아무리 큰 죄악이 드러나도 압수수색 한번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산은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아무리 공정사회를 외친다고 해도, 수사와 재판이 공정하지 않는 한, 형관을 믿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독립된 재판권이 위축당해도 법치국가의 체면이 아니고, 검찰권이 권력의 눈치에 의하여 좌우되어도 진정한 법치국가는 절대로 아닙니다.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사건에는 가혹하게 손을 대어 파헤치면서도, 정작 손을 대야 할 의혹 사건에는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국민의 마음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명백한 판단으로 즉석에서 처결해 주어서 세월을 천연하는 일이 없다면 음산한 날씨에 벼락 치듯 맑은 바람이 씻어버린 듯 할 것이다. (明斷立決 無所濡滯 則如陰?震霆 而淸風掃滌矣 : 단옥)라는 대목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줍니다.

음산한 날씨를 맑은 바람이 불어 씻어주는 그런 수사와 재판은 언제쯤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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