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관(牧民官)을 어떻게 통제할까
목민관(牧民官)을 어떻게 통제할까
  • 남도방송
  • 승인 2012.06.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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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안위(安危)는 인심의 동향에 달려있고, 인심의 동향은 백성들의 편안함과 고통스러움에 달려있고, 백성들의 편안함과 고달픔은 목민관의 잘잘못에 달려있고, 목민관의 잘잘못은 관찰사의 공정한 상벌에 달렸으니, 관찰사가 목민관을 평가하는 고과(考課)의 방법은 곧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따라가는 기틀이요 국가의 안위를 판단하는 것이니, 그 관계된 것이 이와 같이 중요한데, 그런데 그 법이 소루하고 분명치 못한 점이 지금과 같은 적이 없으니, 신(臣)은 그윽이 걱정스럽습니다." 

(國家安危 係乎人心之向背 人心之向背 係乎生民之休戚 生民休戚 係乎守令之臧否 守令臧否 係乎監司之褒貶 則監司考課之法 乃天命人心向背之機 而國家安危之攸判也 其所關係 若是其重 而其法之疎漏不? 莫今時若 臣竊憂之 : 玉堂進考課條例箚子)  

30대 초에 옥당(玉堂), 즉 홍문관이라는 명예로운 관서에 벼슬하게 된 다산은 당시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인 고과제(考課制), 바로 목민관들의 업무평가의 미비점을 지적하면서, 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정책건의서를 정조 임금에게 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목민관은 예외 없이 우수한 관원 중에서 임금이 직접 임명하던 관선제 였지만, 그들을 통제하고 그들이 올바른 업적을 이루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쥔 목민관, 작은 나라의 군주(君主)에 비견되던 그들의 잘잘못이 바로 국가의 안위와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음은 너무나 정당한 판단이었습니다.

   
▲박석무 이사장
그 당시의 목민관은 오늘로 보면 시장·군수·구청장에 해당하는 기초자치단체의 장이며, 관찰사는 오늘의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에 해당됩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임명하던 관선이 아니고 주민의 투표에 의한 선출직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통제수단이나 고과평가는 참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전제군주 시대의 임명직 목민관의 고과평가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선출직의 자치단체장을 고과하는 일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1995년에 시작된 자치단체장의 선출은 벌써 4번째에 이르렀으나,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문제점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다산은 당시의 시대와 맞는 아홉 항목의 중요업무를 열거해놓고, 그 항목마다에 세부 처리 내용까지 정하여 항목과 세부 내용의 잘잘못을 평가하여 성적표를 매겨서, 잘하는 사람은 포상하고, 잘못하는 사람은 징계하는 제도를 시행하라고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기본 강령으로 율기(律己)를 제시하고는 자치단체장의 백가지 업무의 기본은 율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는 자목(字牧), 세 번째는 시적(市?), 네 번째는 호적(戶籍), 다섯째는 전정(田政), 여섯째는 문교(文敎), 일곱째는 무비(武備), 여덟째는 형옥(刑獄), 아홉째는 공선(工繕)이라 정하고는 상지상(上之上)에서 하지하(下之下)까지의 서열을 정해서 잘잘못을 따지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율기를 통해 청렴성, 인격적인 행정, 도덕적인 업무수행을 요구하였고, 자목을 통해 약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어떻게 보살펴주느냐를 판별했습니다. 그 당시와 오늘의 행정업무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맞도록 항목을 제대로 조정하여 실천에 옮기도록 독려하라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습니다.

막강한 권한은 주어져 있으면서, 통제력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지자체장들, 19대 국회에서라도 새로운 법을 제정해서 그들이 제대로 일할 터전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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