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남도방송] 대통령선거는 대체적으로 집권정부의 심판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집권여당과 보수 언론의 프레임 전략으로 인하여 심판적 성격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우선 MB정권의 신자유주의 경쟁만능주의가 약속했던 '저비용-고효율' 사회는 힘과 권력 있는 자들에게는 현실이 되었을지 몰라도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지독스런 '고비용-저효율'의 연속이었다.

또한 한 달에 몇 만원, 아니 몇 천원일지 모를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귀중한 생명을 잃은 저소득층의 아픔은 강 건너 불이요. 몇 억 원의 검은 돈을 챙기는 고위 권력은 집권세력의 비호 아래 호의호식 하고 있는 것이 MB정권의 모습이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친이-친박이라는 당내 계파 갈등을 여·야 간 대립에 맞먹는 갈등구조로 대치시킨 결과가 '반MB=반새누리당'이라는 공식을 교란시키는 데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큰 선거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심판자로 프레이밍 되면서, 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동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정권심판의 주체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는 야권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야권후보 단일화로 정권심판의 프레임을 굳힐 수 있었던 초기에 이해득실 때문에 미적미적 시간을 보내다 상대후보의 출마 철회로 인해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일화 과정에서 일었던 여러 잡음과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승적 명분에 상처를 입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번 대선은 정부가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온 패러다임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의 전망이 화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후보의 과거 발언이 전국적 이슈로 등장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반복이 가져오는 가장 참혹한 결과는 냉소주의와 정치무관심의 확산이다. 선거가 우리 삶의 새로운 전망을 설계하기 위한 설렘의 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분리해 버리고, '정치는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수용한다.

하지만 대선은 누가 뭐라 해도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시간이며 앞으로 5년 동안 전개될 정치의 폭을 결정짓는 순간이다.

이것은 설령 선거가 지엽적인 문제나 거짓에 현혹되어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로 선택을 했건, 지금의 결정은 향후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지난 5년 동안 정치적 권위주의가 복원 되었고, 힘의 논리가 정당성의 논리를 압도했다. 국가의 재산과 공적인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넘실대도, 그것을 제어할 권력이 없었다.

정치권의 이전투구를 욕하거나 언론의 편파방송을 탓하기 전에, 유권자가 먼저 이번 대선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시대적 의미를 잃어버린 선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국민 자신이다.

따라서 ARS나 여론조사로 드러나지 않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권에 전달해야만 한다. 조금씩 힘을 합친 정치적 행동은 수조원의 돈이 강바닥을 헤집는 데 쓰이게 만들 수도, 우리 아이들의 보육비나 등록금 보조금으로 쓰이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투표용지를 ‘유권자가 정치권에 던지는 종이돌(paper stone)'이라 부른 정치학자 쉐보르스키의 말에 공감이 간다. 제18대대통령선거에 대한민국 유권자 누구에게나 한 개의 종이돌이 주어진다.

지난 5년이 불만이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종이돌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낮아질수록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될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게 될 것이며,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정치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은 분루를 삼키며 또 다시 5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종이돌을 던져야 한다.

윤병철 행정학 박사
▣ 사)한국지역정책개발연구원 원장.
▣ 국립순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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