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시회도 열고 책도 출간해 할머니 작가가 되었다. 전남 순천시 동외동 순천시립 그림책 도서관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보이고 있는 라양임, 안안심, 이정숙, 황지심 작가(왼쪽부터)
이제는 전시회도 열고 책도 출간해 할머니 작가가 되었다. 전남 순천시 동외동 순천시립 그림책 도서관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보이고 있는 라양임, 안안심, 이정숙, 황지심 작가(왼쪽부터)

[위클리 공감] “자, 오늘부터 그림을 그려볼 거예요. 재미있게 가르쳐드릴게요. 오늘은 먼저 사물을 그려볼까요? 가방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보실래요?” 할머니들은 눈만 멀뚱멀뚱할 뿐 미동도 없다.

“우린 그림 못 그려요.” “그림 그려본 적 없어요.”

“아니, 그림을 못 그린다니요. 이제 하나씩 그려보면 되죠. 염려 마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은 안 나오고 땀만 흘러내렸다. 이걸 어쩐다. 차분히 할머니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내가 해왔던 미술 수업은 이분들에게 맞지 않음을 금세 알아차렸다. 기본 도형부터 그려보기로 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그리는 할머니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처음 시작한 점과 끝이 맞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셨다. 모양이 삐뚤다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187~188쪽)

2017년부터 순천시립 그림책 도서관에서 미술 수업을 하고 있는 김중석(51) 작가는 할머니들과의 첫 수업을 이렇게 기억한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그리기 힘들어하던 할머니들이 최근 순천을 넘어 미국까지 진출했다. ‘순천 소녀시대’라고 불리는 할머니 20명의 살맛 나는 인생을 담은 그림 전시회가 미국 뉴욕 미켈슨갤러리에서 4월 15일 개막했다.

개막식에는 장선자(76), 정오덕(78), 황지심(69) 할머니 세 분이 한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에는 2월 출간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에 수록된 글과 그림 60점, 에세이 등이 선보였다. 이후 서재필기념재단(필라델피아), 셔우드 커뮤니티센터(페어팩스), 타이슨스-피밋 도서관(폴스처치) 등 미국 3개 도시에서 6월 22일까지 전시회가 진행된다.

처음부터 할머니들의 그림이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김 작가의 페이스북에 공개된 그림일기가 찬사를 받으면서 2018년 서울과 인천에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 전시회를 열게 됐다. 2월에 그림책으로 출간됐고, 4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2019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서울·인천 이어 이탈리아·미국서도 전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5월 14일 전남 순천시 동외동 순천시립 그림책 도서관에서 만난 김 작가는 할머니들의 그림이 기존 미술과 다른 개성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림으로 뭘 꾸미려 하지 않고 순수하게 나오는 게 있어요. 선입관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전에 그림을 배워본 할머니들하고도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지식으로 그리려는 게 있었어요. 원근감이 있다든지 색을 쓸 때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그런데 순천 할머니들은 본능적인 느낌으로 그리세요. 아이들 그림 같기도 하고 민화 같기도 하지요. 살아오신 인생 중에 힘든 부분이 있으니까 역으로 그림을 밝게 그리고 싶다고도 하셨어요. 환하게 그리시더라고요.”

할머니의 일기와 그림을 엮은 책에는 시집살이의 고단함, 자식들과의 추억, 젊은 시절을 통과한 고통의 시간이 기록돼 있다. 김 작가의 말처럼, 아프고 아팠던 일들이 할머니 손등처럼 거친 세월을 지나 조금은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목소리로 담겼다.

구멍 뚫린 양말 때문에 결혼 / 장선자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갔는데 모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나와 선볼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맘이 갔습니다.
우리는 맘에 들어 자주 만났습니다. 하루는 둑길을 걷다 광양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이 자장면을 먹자고 했습니다.
메뉴판을 보더니 나가자고 해서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나중에 돈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장면 한 그릇도 못 사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고마운 친정 오빠 / 안안심

딸을 하나 낳고 첫 아들을 낳았는데 장애아를 낳았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남편은 화를 내며 다시는 자식을 낳지 말고 남남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나는 한쪽 다리가 휜 아들을 낳은 죄로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습니다. 친정 오빠는 우리 아들 다리를 보고 깜짝 놀라 광주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시댁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나무밭에 숨었다가 친정집으로 갔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데리러 왔습니다. 그때 친정 오빠 덕분에 아들 다리도 정상이 됐고 남편하고 사이도 좋아졌습니다.

뒤끝 없는 영감 / 라양임

우리 영감은 나하고 금방 싸워놓고도 ‘어이, 밥 먹세’ 하고 안 싸운 것처럼 했습니다. 나는 화가 났다가도 뒤끝 없는 영감 때문에 금방 화가 풀렸습니다.
우리 영감은 성질은 급해도 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마루에 앉으면 차갑다고 얼른 방석을 가져다 깔아주었습니다.
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데 처음에는 내가 철이 없어 영감 속을 썩였습니다. 영감은 군대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이북 사람한테 몇 번을 잡혀갔다 오고 총을 맞아 상이군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영감이 돌아가시고 나서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덴뿌라 / 손경애

형편이 어렵다 보니 싸고 양 많은 덴뿌라를 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싸줬습니다. 딸들이 말없이 잘 먹어서 좋아하는 줄 알고 집에서도 자주 해줬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딸들과 이야기를 하다 어릴 때 덴뿌라를 질리게 먹어서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껏 자식들 맘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낮에는 남의 집에 일 다니고 밤에는 구슬을 하나라도 더 꿰려고 밤잠을 설치며 살았는데 형편은 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잘해주지 못했습니다.

난해한 문장,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순한 말들이 고요하게 마음에 들어와 앉는다. 할머니들이 쓴 문장보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글을 모르고 시집살이하며, 때로는 폭력 남편을 겪으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책 제목처럼 글을 몰랐을 뿐, 할머니들은 세상 풍파를 지나온 아름답고 강인한 작가들이다.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2009년, 99세의 나이에 등단한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1911~2013)가 시 ‘약해지지 마’에서 낮게 읊조린 것처럼. 어렵고 괴로운 시간을 뚫고 온 사람이 건네는 위로가 그림과 글에 담겨 있다.

맞춤법 틀려 욕이 돼도 웃음꽃 터져

할머니들은 그림에 앞서 2016년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형편이 어렵거나, ‘여자는 배울 필요 없다’는 옛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살다가 뒤늦게 배움의 재미에 푹 빠졌다. 김순자 글선생님은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감을 북돋아주었다. 자신을 글 모르는 창피한 존재라고 여겨온 할머니들에게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고 용기를 준 이도 김순자 씨다. 맞춤법이 틀려서 의도치 않게 욕이 된 이상한 문장 때문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영어로 ‘헬로우, 디져’라고 써서 웃은 일화가 책에 기록돼 있다. 글과 그림을 배우며 할머니들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전에는 말할 수도 없었어요. 예방접종 하려고 보건소 가도 주민번호랑 주소를 쓸 줄 몰라 남의 손 빌리고, 통장에서 돈 빼는 것도 모르고, (노선도를 못 읽으니) 버스도 한없이 기다리다 놓치고. 공부를 배우려고 겁나게 노력했지요. 순천시에서 공부한다는 소리 듣고 우리 선생님 만나고, 이후에 그림 한번 해보자 해서 그렸는데 우리가 뜰 줄은 몰랐어요. 지금은 짱이에요. 너무너무 좋고 내 통장 만들어서 쓰고 은행 일도 보고, 주민번호와 주소 쓰기도 마음대로 하니까 정말 행복하죠. 그림을 그리니께 모든 것이 좋아요. 그림을 그리고 또 작가도 되고 책도 내고 저 미국까지 갔다 오고. 지금은 쪼깨 그리고 나니까 조금 자신감도 생기고. 작년에 서울에 전시회 하러 갔는데 아무도 나한테 사인 요청을 안 해서 전시관 밖으로 혼자 빠져나갔는디, 누가 나더러 ‘빨리 와’ 그래서 얼른 들어가 사인을 해줘부렀어요.”

황지심 할머니는 2018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아무도 사인 요청을 하지 않자 혼자 전시관 밖으로 나가 눈물을 훔치다가 급히 들어갔던 일을 털어놓으며 웃음을 지었다.

▶안안심 작가의 그림. 딸을 출산하고 시어머니의 눈치를 받았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가장 잘하는 자식이 딸이라는 내용의 일기 ‘나락 한 섬’을 쓰고 이 그림을 그렸다.

“이젠 그림이 살아가는 낙이고 힘”

“저는요. 처음에는 동그라미, 작대기도 못 내렸는데 하다 본께 선생님이 이렇게 도와주시고, 조금씩 마음이 편코 좋아요. 자녀들도 잘했다고 그래요.”(이정숙 할머니)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멍청이라고. 인자는 내가 (글을) 볼 줄 아니까 자식들 앞에서 떳떳해요. 그 전에는 그림을 전혀 못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니까 마음이 훈훈하고요. 그림을 그리면 어딘가로 싹 가불고(어딘가로 가는 느낌이 들고) 한정없이 그림에 파고들게 돼요. 그리다 보면 시간이 그냥 지나가요.”

전시회를 연 후 인터뷰를 제안하면 한사코 거절해왔다는 안안심(80) 할머니는 이날 기자의 질문에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할머니들의 남은 소원은 무엇일까.

“인생이 긍께, 시방 서울 있는 아들이 평소에 ‘엄마는 공부 쪼까 해야 해요. 엄마는 아이큐가 좋아요’라고 말했는데 그때는 아이큐가 뭔지도 몰랐어요. 지금은 알지만. 이제는 그림이 살아가는 낙이고 힘이 돼부렀어요. 앞으로 요거 하는 것을 더 해야지요. 잘할 수 있는 것은 그림밖에 없어.” 라양임 할머니가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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