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방송] 1793년 어느 날 경연(經筵)에서의 일이다.

곡식 5만 포(包)를 보내달라는 제주목사의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전라관찰사는 전라도 일대에 저축해 둔 곡식이 많이 줄어들었고, 또 제주도는 호구가 3만 호밖에 안되니, 5만 포의 절반만 보내주면 된다고 보고해 왔다.

정조는 “저 섬의 굶어 부황이 든 백성들이 밤낮 먹여주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만약 반을 줄여주라고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찌 실망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바닷가 고을의 형편도 전라도에서 아뢴 바와 같으니, 제주도 백성 때문에 전라도 바닷가 고을에 해를 끼칠 수도 없다.

도신(道臣, 관찰사)이 올린 보고서대로 3만 포를 빨리 실어 보내도록 하라. 나머지는 내탕고의 돈을 내어 주겠다.” 5만 포를 다 보내되, 전라도 바닷가 고을에 피해를 끼칠 수 없으니, 임금의 개인 재산(내탕고)에서 돈을 내어 2만 포를 보충해 주겠다는 것이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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