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지원 "포고령 2호 위반은 광범위하고 포괄적, 죄형법정 주의 위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순천/남도방송]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게 협조한 혐의로 희생된 김영기(당시 23세·순천역 철도원) 씨와 김운경(당시 23세·농민)씨의 유가족 9명이 70여 년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됐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송백현 부장판사)는 24일 포고령 2호 위반 혐의로 희생당한 여순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김영기 씨와 김운경 씨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포고령 제2호 위반은 내용이 적용 범위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국민이 범죄 행위를 판단하기 어렵고 또 법률에 따라 형을 구하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본다"면서 "무죄 선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길로 이어지길 바라며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내란 혐의부분은 재심 결정 시 검사가 유죄에 부합하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고 당시 비인도적 취조와 고문 자행, 피고인에 대한 가옥한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종합하면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제출 됐더라도 불법 구금이후 만들어진 증거이고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여순사건 등을 빌미로 반공 정책 등을 시행하면서 피고인들이 공정한 절차로 재판받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지난달 13일 순천지원 제1형사부(송백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순천역 철도원 김영기 씨와 대전형무소에서 숨진 농민 김운경 씨 등 여순사건 희생자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김영기 씨와 김운경 씨 등에 대해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은 내란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고 포고령 위반도 적용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위법했다고 무죄 구형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김영기 씨에 대해 "반란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무고하게 국가 권력에 희생을 당했다"며 "피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고 유가족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군사법원이 민간인을 재판한 점으로 미뤄 위법성이 의심되는 등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재판부에 "무죄 선고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순천역에서 근무하던 김영기 씨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발발한 뒤 동료와 함께 진압군에 영장도 없이 체포돼 내란죄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목포형무소에서 수감됐다가 마포형무소로 이감된 뒤 한국전쟁이 터진 후 행방불명됐다.

이들은 포고령 위반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6.35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1950년 6월 대전시 산내동 골령골에서 다른 재소자들과 학살을 당했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법정을 가득 메운 유족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재판부의 선고를 환영했다.

고 김영기 씨의 아들 김규찬 (73) 씨는 "잘못된 국가 권력에 의해 그동안 가족이 파탄 났으나 73년에 억울함을 풀게 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면서 "많은 분이 절차 문제로 소송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가 나서서 재판부가 판결한 가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많은 희생자와 유족들이 한을 풀 수 있도록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2019년 3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순천지원서 열린 지난 1월 열린 첫 재판은 철도기관사로 근무 중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고 장환봉(당시 29세) 씨에 대한 재심 공판으로 법원은 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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