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되지 않게 여수의 보석섬으로 가꿀 거예요”
“무인도 되지 않게 여수의 보석섬으로 가꿀 거예요”
  • 조승화 기자
  • 승인 2022.06.13 13: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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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여수 금죽도 김채봉 씨 부부
지난 2005년부터 여수 금죽도에 정착한 김채봉(70)‧정순희(66) 씨 부부는 이 섬에서 소박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여수 금죽도에 정착한 김채봉(70)‧정순희(66) 씨 부부가 이 섬에서 소박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여수/남도방송] 여수 돌산의 외딴섬 금죽도. 한 노부부만이 사는 이 섬은 여수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안에 위치해 있지만, 토박이조차 잘 알지 못하는 섬이다.

지난 2005년부터 여수 금죽도에 정착한 김채봉(70)‧정순희(66) 씨 부부는 이 섬에서 소박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섬 곳곳에 꽃나무도 심고, 섬을 가로지르는 둘레길도 만들면서 섬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단 한 가구만 사는 이 섬. 부부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란 김 씨는 젊은 시절 시내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아내 정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지난 2005년 직장을 접고 아내와 함께 입도했다.

중년의 나이. 섬 생활이 그리 호락하지 않을터인데 성인이 된 아이들은 부모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부부의 뜻을 존중했다.

사실 김 씨는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이 섬에서 나고 자라면서 고향과 늘 삶을 함께해 왔다. 금죽도 역사의 산증인이자 파수꾼인 셈이다.

“제가 나고 자란 섬이라서가 아니라 섬 전경이 너무 이쁘고, 아담해요. 누군가 섬을 아름답게 가꾼다면 지역의 또 다른 관광명소가 될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마치 통영 외도나 고흥 쑥섬처럼 섬을 꽃과 나무의 섬으로 가꾸겠다는 포부다.

김 씨 부부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FRP선. 김 씨가 배를 정비하고 있다.
김 씨 부부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FRP선박. 김 씨가 배를 정비하고 있다.

김 씨 부부에겐 0.5톤 FRP선 한 척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뭍에 나가 생필품을 사 오거나 식구들을 섬으로 데려오는 자가용이나 마찬가지다. 

또, 없어선 안 될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김 씨 부부는 인근 바다에 펼쳐놓은 이각망으로 전어·도다리·노래미·숭어 등 생선을 잡아 시내 횟집 등에 판매하고 있다.

소박한 생활에 욕심내지 않고 자연에 동화하면서 말그대로 ‘안빈낙도’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 섬의 자랑거리는 물이다. 흔히 섬에선 식수가 부족한데 이 섬에는 3개의 우물이 있어 물부족 걱정은 없다. 물맛이 좋아 주변의 양식장에서 와서 물을 퍼 갈 정도라고 한다.

지하 85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는 섬에서 꼭 맛봐야 하는 명물이다. 아내 정 씨가 이제 막 퍼 올린 암반수를 컵 가득 담아 내온다.

“쭉 들이켜보시고, 청량감을 느껴보세요. 시중에서 파는 어떤 생수와도 비교가 안 될 겁니다. 밍밍한 맛이 아니라 입안을 휘몰아치는 느낌, 무언가 살아있는 맛이란 표현이 정확할 거에요”

금죽도의 명물 암반수. 지하 85m에서 끌어올려 청량감이 매우 좋다.
금죽도의 우물. 물이 부족한 여느 섬과 달리 물이 풍부하고 수질이 맑다.

금죽도의 지명 유래는 섬에 대나무가 많아 멀리서 보면 금빛이 나 '금죽도'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곳에서 난 대나무는 화살을 만들기에 적합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만들어 왜구를 소탕했다는 설이 있다. 대나무 품질이 좋기로 소문나 왕실에 조공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현재 이 섬에 대나무는 거의 없다.

이 섬은 해안선 길이가 1.6km 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섬이지만 한때 50여 명의 주민이 북적거리며 살았다.

지난 2011년 작고한 아버지는 해방 전 금죽도에서 태어나 군 복무와 자녀 교육을 위해 잠시 섬을 비운 것 외에 섬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씨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집터는 과거 주막이었다고 한다. 바다 노동에 지친 뱃사람들이 들러 막걸리를 들이켜곤 했던 아련한 옛 기억은 격세지감을 불러온다.

금죽도는 그의 삶에 있어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그는 곰곰히 생각한 뒤 답했다. 

“금죽도는 저에겐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위로하고, 앞으로 삶을 제시하는 일종의 등대라고나 할까요.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나고 자란 섬이 무인도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여수의 보석섬이 되도록 더욱더 가꿔 나갈 거예요”

여수 돌산 금죽도의 전경.
하늘에서 바라본 여수 돌산 금죽도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