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대표 힐링 섬으로 각광
거친 섬 사람들 생활상 간직
외세침략 아픈 역사 고스란히

거문도 등대와 동백꽃.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등대와 동백꽃 (사진=조승화 기자)

[여수/남도방송] 전남 여수반도에서 남동쪽으로 114.7㎞ 떨어진 남해안 최남단 섬. 거문도는 지리적으로 여수반도와 제주도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지만 행정구역상 여수시 삼산면에 속해있다. 여수 365개 보물섬 중에서도 보배로 꼽힐 만큼 그 가치가 뛰어난 섬이다. 

최근 쾌속선이 오가며 여수의 대표 여행지가 됐지만 과거 거문도는 미지의 섬으로 불렸다. 주민들조차 반나절 가까이 목선을 타고서야 겨우 뭍에 닿았다고 하니 옛 섬 주민 삶의 역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불과 200여년 전까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 중 오지였다. 그러나 외세 침략 등 근현대사 부침을 겪었고 그 속에서 섬사람들 애환이 곳곳에 서려 있다. 요즘 거문도 여행은 힐링과 휴식으로 대변되지만 한편으론 나와 우리 존재에 대해 한번쯤 곱씹어 보게 하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거문도는 등대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남단과 최북단에 자리 잡은 두 등대는 마치 섬을 지키는 장승처럼 역사의 궤를 묵묵히 지켜봐 왔다. 

거문도 등대는 봄에 찾아야 제격이라는 말이 있다. 그곳을 찾아가는 서도 남쪽 수월산은 원시림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30여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으며 걷는 도중 기암괴석과 호젓한 해안 절경에 온전히 전방을 주시하기가 어렵다. 붉은 주단을 깔아놓은 듯 여기저기 낙화한 동백꽃과 진록의 원시림은 강력한 색채 대비를 이룬다.

거문도등대.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등대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동백터널.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동백터널 (사진=조승화 기자)

1905년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지난 100여년 동안 다도해 등불을 밝혔다. 그간 노고를 달래듯 지금은 새 등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관백정에 올라서자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 풍광에 감탄사가 연신 터진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백도도 날씨만 좋으면 이곳에서 관측할 수 있어 최고 전망 포인트로 꼽힌다.

다시 동백터널을 지나 유림해수욕장을 건너면 고도로 이어지는 삼호교에 당도한다. 차선이 좁은 탓에 양보하지 않으면 통행이 어렵다. 면 소재지인 고도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북적이고 숙박시설과 식당가가 밀집해 있다.

반면 고도와 서도 반대편에 있는 동도는 외지인 접근이 쉽지 않다. 2015년 거문대교가 개통하면서 동도 주민 생활상을 지근거리에서 엿볼 수 있다. 오밀조밀한 마을 어귀에 그려진 벽화와 거센 바람으로부터 가옥을 지키고 있는 돌담 등 고즈넉한 모습은 서도, 고도와는 색다른 정취를 선사한다.

백도는 거문도 여행의 화룡점정.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 해상에 위치한 백도는 다도해 해금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한다. 39개 섬으로 이뤄진 무인군도로 경치가 뛰어나 국가 명승 7호로 지정됐다.

백도 풍경. 자료사진
▲백도 풍경 (자료사진)

거문도 또 다른 매력은 둘레길이다. '거문도 뱃노래길'은 거문도만이 가지고 있는 천혜 자연경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해안 절경에 조성한 길이다. 높이 195m 불탄봉에 이르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 섬의 모든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의 연못이라는 뜻의 '용연'은 기암괴석에서 뿜어져 나온 지하수가 고여 형성된 담수못이다. 섬 반대편 외딴곳에 있어 주민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다. 둘레길을 걸으며 드문드문 보이는 바다 절경과 산새 지저귀는 소리, 온갖 수초들이 지루함을 잊게 만든다.

서도마을에서 시작해 녹산 등대를 지나 이금포해수욕장에 다다르면 둘레길 여정도 종착역에 이른다. 거문도 등대가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라면 녹산 등대는 '어머니' 느낌을 주는 곳이다. 서도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등대는 거문도 등대와 달리 크기가 작지만 가는 길이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깎아지른 벼랑을 뒤로하고 굽이굽이 언덕을 지나면 한 손에 잡힐 듯한 등대 모습이 떠오른다. 저 멀리 유유자적하는 어선과 광활한 바다는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듯 이국미를 선사한다. 최근 거문도 전설 인어를 소재로 한 '신지끼'상도 이곳에 있다. 바다와 등대, 생태가 삼박자를 이룬 둘레길은 국내에서도 흔히 보기 어렵다.

거문대교.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서도와 동도를 잇는 거문대교.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녹산 등대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동도의 고즈넉한 마을 모습 (사진=조승화 기자)
▲불탄봉에서 바라본 거문도 고도 모습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영국군묘지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용연.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용연. 용의 연못이라는 뜻으로 기암괴석에서 뿜어져 나온 지하수가 고여 형성된 담수못이다. (사진=조승화 기자)

영국군묘지는 외세 침략 한이 서린 역사의 산 현장이다. 1880년대 후반 영국 군함이 이곳에 정박해 침략 전초기지로 삼았을 당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국 군인 묘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열강 침략 잔재가 지금은 주요 관광코스로 변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금강산도 식후경. 거문도서 맛집을 찾아 기웃거린다면 자칫 '촌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낙으로 갓 잡아 올린 삼치며 고등어, 갯장어 등 살아있는 신선한 수산물을 대부분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섭'이라 일컫는 토종 홍합, 거북손, 배말(삿갓조개) 등 뭍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진귀한 갯것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돼지국밥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과거 부산이나 통영에서 이주해 온 경상도 사람들이 정착민이 됐다고 한다.

▲거문도 신지끼상.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신지끼상.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회정식.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회정식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의 밤 풍경. 사진=조승화 기자
▲거문도 밤 풍경 (사진=조승화 기자)

일상에 지친 나그네에게 섬은 최고의 안식처다. 저녁 8시면 모든 식당과 점포들이 문을 닫고 저잣거리에는 어둠이 내린다. 별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적막 흐르는 거리를 홀로 걷는다. 

거친 바다에서 돌아와 항구를 촘촘히 메운 어선, 어물전에 널브러진 그물과 통발은 섬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여과없이 투영한다. 가족 생계와 만선을 꿈꾸며 바다로 향했을 아버지. 무사 생환을 애타게 바랬던 가족.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아낙의 구슬픈 육자배기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바다는 말 그대로 섬사람들에게는 질곡의 삶 자체다. '거문도‧백도은빛바다체험행사'를 통해 풍어제 등 섬 생활상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섬은 분명 왔을 때와 떠날 때 다른 곳이다. 더욱이 먼바다에 있는 거문도는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쉽지 않아 여행이 주는 여운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을 날을 기약해본다. 하얀 포말을 뒤로 하고 배에 몸을 실은 나그네에게 섬은 말했다.

"답답할 때면 아무 생각 말고 언제라도 오시게. 삼치회에 탁주 한잔하며 내 기꺼이 그대를 반겨줄 테니…"

조승화 기자 frinell@hanmail.net

※ 배편 안내

▲녹동 출발
평화페리11호 7:00~ 13:40
쓰리아일랜드 8:00~ 13:00
웨스트그린호 8:30~ 16:00

▲여수 출발
파라다이호 15:30, 8:00(거문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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