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백년이 되는 금년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국가적 수치를 당한 해가 백년 쯤 흘렀다면 나라와 세상이 확연하게 달라저서 살만한 세상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못하고 아까운 인물들만 세상에서 떠나는 해가 되고 말았으니 가슴아프기 그지없습니다.

봄에는 불교계의 대종사(大宗師) 법정스님이 홀연히 열반하고 나시더니, 이 추운 겨울에는 이 나라 ‘사상의 스승’ 리영희 선생이 또 하늘나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80을 넘기신 리영희 선생님, 천수를 누렸다고 말해지니 통곡할 일이야 아니지만, 때가 마침 이런 국난(國難)의 시기여서 그만한 용기와 지혜를 지닌 어른을 잃은 우리는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금이 승하하면 ‘천붕지통(天崩之痛)’,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고 말하고,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 ‘산퇴양괴(山頹樑壞)’라 하여 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파괴된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연평도사건, 남북문제, 노사갈등, 4대강문제 등 온갖 나랏일에 지혜롭고 용기있는 국가적 인물이 계셔, 그런 모든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할 요즘, 리영희 선생의 타계는 참으로 산이 무너진 비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기자로서의 양심을 실제 행동으로 앞장서서 보여준 대기자, 대학교수로서 학자적 소신을 어떤 경우에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준 지식인, 사상과 이념의 혼돈에 빠진 불확실한 시대에 사상의 푯대를 높이 세우고 가장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향으로 젊은 세대들을 인도해준 사상의 선구자였던 선생을, 과거의 역사에서 어떤 사람과 비교할 수가 있을까요. 여기서 생각나는 분이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18년의 긴긴 유배생활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세우며 인간이 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빈틈없이 면밀하게 정리해준 분이 바로 다산이었습니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여 나라와 백성이 요순시대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처한 시대가 다르고 역사적 조건이 분명이 달랐지만, 다산과 리영희 선생은 크게 보는 범위에서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닌 것은 죽어도 아니고, 진실은 끝까지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로 인한 온갖 고통을 감내했던 분이 리영희 선생이라면, 학문적 소신을 어떤 경우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결단에 의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훌륭한 학문을 개척했던 학자가 다산이기 때문입니다. 법정도 가시고 리영희 선생도 가셨습니다. 다산선생의 탄생 250주년이 2012년인데, 다산의 뜻은 전혀 세상에서 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로 평화로운 나라이기 위한 온갖 지혜가 그리운 때인데, 지혜를 지닌 분들은 떠나고 옛날의 지혜는 다시 부활할 줄을 모르니 이 안타까움을 어찌 할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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