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중고책 서점 “형설서점”을 찾아서

“헌 책은 우리의 인생과 같다. 목적 없이 필요 없이 이 세상에 만들어진 책은 없다. 단지 상황에 따라 목적에 따라 그 쓰임이 우선은 다하고 또 다른 쓰임을 위해 그렇게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 목적과 상황에 딱 맞을 때까지 인간의 존엄성으로 그를 보듬어야 하듯이 헌 책도 임자를 만날 때까지 잠시 내가 보듬을 뿐이다.”

형설서점 조 순익(48)사장에게 ‘헌책이란 본인에게 무엇인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가 답한 말이다.

학창시절 부족한 용돈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한번쯤은 들러보았을 헌책방이다.

새 책도 많고, 신간도 많은데 고서도 아닌 헌 책을 요즈음에도 누가 사서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그래도 몇 군데는 눈에 보이던 헌 책방들이 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데 최근에 매장을 확장하여 이전을 할 정도로 헌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궁금하여 그를 찿았다.

▲형설서점  조 순익(48)사장.


벌써 30년이 다 되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랑 1982년에 시작하여 안동을 거쳐 순천에 자리를 잡았으니 헌책과 인연을 맺은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중국 진서(晉書)의 차윤전(車胤傳) 손강전(孫康傳)에 나오는 말로, 진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을 모아 그 불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가난하여 겨울밤에는 눈빛에 비추어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의 형설을 사용하는 그는 고사만큼이나 열정적이고 뜨거웠다.

조 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가장 좋아 한다는 그는 1987년 안동에서 사업을 시작할 즈음이었고, 처음에는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았던 지역민들이 나중에는 태백산맥을 들고와 지역문화와 정서, 배경에 대해서 문의를 하고 그들과 밤새 토론을 할 정도로 지역민들과 막혁한 사이가 되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과는 절친이란다.

태백산맥은 단지 사건적 문제에 단일화하지 않고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 갈등, 계층의 문제까지 폭 넓고 객관화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여 좋아한다고 했다.

“벌교꼬막을 ‘외서댁의 꼬막’만이 아닌 배경과 역사, 지역을 함께하는 문화를 파는게 더 중요한데”라며 상혼에 빠진 일부 음식점 점주에 일침을 놓기도 한다.

▲형설서점 매장 전경


현재는 돈 보다는 보람과 긍지

벌이는 괜찮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한동안 그래도 괜찮았다. 그래서 가까운 친인척 분들에게 권하기도 했고 지금은 여수에서 친 형님이 똑같은 형설서점이라는 상호로 사업을 하신다. 참 우스운게 서점의 사양길이 인터넷이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이 나를 먹여 살린다. 특이성과 보유량 때문에 전국의 필요한 많은 분들이 꽤 주문을 한다”

필자와의 대화 중에도 많은 이들이 책을 고르고 찾고 인사들을 나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으로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다양한 책들을 고르고 사 간다.

“헌책은 그 특성상 구매가 가장 어렵다. 책을 접했을 때 책의 외형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 책이 가지는 전문성, 희귀성, 필요성, 문화성, 역사성, 수요까지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지금은 내가 가지는 책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 사업적 적이다. ‘헌책에 주인은 꼭 있다’라는 확신과 자신은 있지만 사업적인 부분으로 판단하면 재고의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매장을 몇 시간씩 찾다가 약간의 미소 띤 얼굴로 ‘이런 책은 나 아니면 살 사람 없을거야’라며 약간의 거들먹과 함께 책을 내미는 분이 밉기도 하고 가장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중년여성이 책을 고르고 있다.


헌책도서관 만들고파......

돈도 안되고 고달프게만 보이는 일을 하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우선은 헌책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폐교 같은 곳을 매입하여 헌책들을 모조리 진열하고 전시도하고, 진열도 하고, 판매도 하는 책문화의 복합적 공간을 만들고 싶다”

헌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로서는 현실적인 경제적 문제만 친다면 공간을 훨씬 더 적게 만들어야 맞지만 책이 좋아서나 필요해서 찾아 오신 분들의 편리성과 쾌적한 분위기를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헌책에도 정가가 있을까? 매니아는 누구일까?

물론 정가도 있고 매니아도 있고 꼭 필요한 이도 있다.

여러 상황에 의해 책은 나름대로 불문율적인 담합이 아닌 자율적 규칙대로 전국의 가격이 비슷하게 형성되는 나름의 문화가 있고, 논문이나 저술을 위한 참고 서적이 필요할 때 꼭 있어야 하는 책들이 있으며, 과거나 지난 책들을 소장하거나 재 구독을 위한 매니아들이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형설서점 외부간판


“또 한 가지는 중국에서 헌책방을 하고 싶다. 벌이가 조금 나았을 때 대도시나 해외에 눈을 돌려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중국어를 약 3개월 정도 배우고 무작정 북경으로 갔다. 북경을 비롯해 청도 등 2 ~ 3개 도시를 돌아보고 왔는데 자신이 있다”

적지않은 나이에 외국어를 불과 3개월 배우고 혈혈 단신으로 중국을, 그것도 관광도시만이 아닌 공안력이 부족한 위성도시들까지.

왜소하다 싶을 정도의 그의 체구가 갑자기 거구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항상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모르지만 있어서 언제나 든든했던 엄마처럼, 무슨일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바쁜 탓에 1주일에 얼굴 한 번 보지만 언제나 묵묵히 가족을 위하는 아빠처럼, 그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그의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안 도현 님의 시가 떠 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매장 내 온방기구로 연탄난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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