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임은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되어지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살펴보면 이런 것도 교육일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십년이 넘도록 중고등학교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친 적이 있고, 40대 후반부터는 국가의 교육 정책을 해부하여 인간을 가르치는 교육정책이 되도록 8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한 때도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학술진흥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일도 하였고, 대학교를 운영하는 일에도 관여하고, 대학교에서 직접 강의하는 일에도 10여 년째 종사하면서 ‘교육’이라는 일과는 무관한 적이 없을 정도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볼 때, 요즘의 우리 교육은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 많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나 여러 저서에서 교육의 중요성이나 그 본질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참으로 많은 논의를 펴고 있는 점을 보면, 그만큼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라의 통치행위는 백성을 교육하는 일일 뿐이다(民牧之職 敎民而已 목민심서 : 「敎民」)”라는 대전제를 내걸고, 더 자세히 설명하여 교육을 위해서 나라의 통치행위가 있음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토지와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일도 앞으로 백성을 제대로 교육하기 위함이요, 세금과 요역을 균등하게 매기는 일도 앞으로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며, 군현을 설치하고 목민관을 두는 제도도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며, 형벌을 밝히고 법규를 밝히는 일도 장차 국민을 교육하기 위함이다”라고 부연하였습니다.

그런 설명 다음에는 결론적으로, “나라의 모든 정치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서 교육을 통한 교화를 일으킬 겨를이 없었으니 이 때문에 수 백년에 이르도록 잘하는 정치가 없었다. (諸政不修 未遑興敎 此百世之所以無善治也)”라고 개탄하였습니다. 선치(善治)는 바로 옳고 바르며 좋은 정치인데, 교육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으니 ‘선치’는 있을 수 없었고, 선치가 없는데 어떻게 또 좋은 교육이 이룩될 수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교육과 정치는 안과 밖이고, 함께 돌아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절대로 하나만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가 바르지 못한데 교육이 제대로 가지 못하고 교육이 바르지 못한데 좋은 정치가 나오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정치, 약속과 신의가 지켜지지 않는 정치, 잘못해도 뉘우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정치, 도덕성이 전혀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정치행위 속에서 어떤 국민이 제대로 교화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맞물려가는 정치와 교육을 위해서라도 정치가 바르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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