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명석 선생…타계 35년만에 제자들 공적비 제막

[여수/남도방송] 뱃길도 마다하지 않고 낙도마을 학생들을 찾아 배움을 손길을 전했던 지역의 한 교육자와 제자들 간 생사를 초월한 애틋한 사연이 전해져 잔잔함이 일고 있다.

여수 여자도 고등공민학교 동문회에 따르면 지난 5일 故 장명석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가 순천시 별량면 구룡리 용두부락 인동 장씨 선산에 세워졌다.

선생 타계 후 35년만의 일이다.

순천 별량면 출신으로 1963년 대학 졸업 후 화정면 여자도에 교사로써 첫발을 딛은 선생은 그곳 학생들 대다수가 가난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선생은 이웃 초등학교 교실에 중등과정인 고등공민학교를 개설해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수 있도록 했으며 마을문고를 두어 도서공간을 개방하는 등 후학양성에 힘썼다.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연극을 가르쳐 주민들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배고픈 학생들에게는 집에서 가져다 온 쌀을 나눠주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계몽의 불씨는 이내 마을전체로 번졌다.

마을주민도 동참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수확한 작물을 내다팔아 손수 마련한 운영비로 학교를 꾸렸으며, 체육대회를 열어 섬마을 주민들 간 교류와 친목화합에도 힘썼다.

선생은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일깨워 준 소중한 존재였다. 그가 부임한 5년 동안 주민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한 채 급작스럽게 서울로 상경한 선생은 직장생활 도중 1976년 지병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향년 38세.

▲ 지난 5일 선생의 공적비 제막행사에 40여명의 여자고등공민학교 동문들이 참석했다.

 

선생의 타계 소식을 전해들은 제자들은 은사의 무한한 고마움을 가슴깊이 새겨야 겠다는 의지끝에 십시일반 금액을 모아 선생의 공적비를 제막했다.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코흘리개 꼬마들은 백발이 성성한 중년으로 변해 선생의 곁에 다시 모였다.

비를 세우고 추모글을 낭독하는 내내 제자들은 고개를 떨군채 말없는 눈물만 흘렸다.

여자공민학교 졸업생 최춘동(65)씨는 “무섭게 때론 온화하게 우리들을 채찍질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면서 “유년시절 꿈과 희망을 주었던 스승님을 이렇게 나마 다시 찾아뵙게 됐다”고 감회에 젖었다.

제자들은 마음속으로 외친다. “잊지못할 은사님, 당신은 영원한 여자도의 페스탈로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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