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이시돌의 “산채정식”

[맛집/남도방송]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문물 들을 쫓아가기에 바쁜 게 내 눈이요, 그 문물 들을 잘 활용하고 이용하는 게 문명이라며 현대라는 단어를 몸에 적응시키고 안착시키려 몸부림을 치대며 생활하는 것이 마치 문화처럼 떡하니 내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주위에 만발하는 꽃을 따라서 광양 매화를 놓치면 안 되고, 하동의 이화는 어쩔 거냐며 떼 질이고, 구례 산수유에 하동 쌍계사 벚꽃은 또 언제 볼 거냐며 졸라대는 앙탈에 맘도 몸도 무척이나 조급스럽다.

벌도 아닌 것이 꽃 찾아 날마다 날고, 나방도 아닌 것이 야경이 최고라며 오늘도 늦은 시간에 야간 운행이다.

좋다. 이쁘다. 멋있다. 상쾌하다. 즐겁다.

긍정적인 미사여구들의 나열이 왠지 단조롭고, 괜히 어느 한 구석이 허함을 느낀다.

이 느낌은 또 무엇일까?

 

▲이시돌 전경

 



도토리 묵에 동동주로 입가심을 하고.

배가 고파서 생긴 허전함인가?

배부르면 나아질 거라는 지인의 진단에 많은 매체에 소개된 적이 많다 알려진 집을 들어선다.

허름한 시골 한옥에 아담하고 단정한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무려 95년이 넘은 고옥이다.

세월이 100년이 되었음에도 일부 몇 몇은 손질이 되었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다.

사람의 정성과 손길, 온정을 담은 발길이 있었고 있음을 말함이리라.

구례라면 먼저 떠오르는 게 지리산이라 산채정식을 주문하고 입가심으로 자연산 도토리묵에 동동주를 불러본다.

 

▲도토리묵 무침

 



탱글탱글한 맑은 밤색 도토리묵에 야채와 버섯이 어우러지고 통깨의 흠뻑 뿌림이 무척이나 시골스럽다.

탄력있는 묵의 출렁임에 섬진강 은어의 힘찬 뒷발질이 떠오르고, 쾌 하니 올라오는 동동주의 누룩 내가 이불 밑에서 보골보골 오르는 아랫목 엄마의 정성이다.

피곤하고 목마름에 그득히 따른 동동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소매로 입을 스윽 밀어보는 장비의 막걸리를 흉내어 본다.

쿠-욱 밑에서 밀려오는 막걸리의 농도가 진함이 결코 싫지 않다.

쌉 쏘름한 묵에 싱그런 상추, 야채, 버섯의 궁합에 동동주가 제자리를 찾고 온 몸이 느슨해 짐이 느껴진다.

포근한 고가 한옥 아랫목에서 차분히 즐기는 동동주 한 사발은 내 자신이 왕위에 즉위했음을 온 천하에 선포한다.

잔잔한 시골 어머니 밥상.

20여 가지의 밑반찬에 된장국에 불고기와 조기 매운탕으로 상차림이 이루어진다.

건채와 선채, 젓갈, 장아찌의 고른 구성에 색상의 배합이 이쁘다.

하얀 백색에 쫄깃함이 전해오는 박나물 들깨무침에 밥 한술을 넘기고, 곰취 장아찌에 머위잎 나물을 올리고 밥과 함께 감싸듯 넘기는 밥술은 밥 도둑이다.

빠알간 고추장 더덕 장아찌가 입술에 먹었음의 흔적을 남기고, 바지락 조개젓갈의 짜지 않고 밀려오는 담백함에 몸둘 바를 모른다.

 

▲산채정식 상차림(2인 기준)


통통한 고사리의 살결이 부드러움을 표현하고 묵은 고들빼기가 심술을 핀다.

오늘도 정식의 가장 바른 식습관이라는 밥은 적게 반찬은 듬뿍이라는 룰을 깨트리고 만다.

반찬이 먹고 싶어서 밥을 또 부른다.

이시돌 만의 별미가 한 가지 또 있다.

바로 김 장아찌.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김 장아찌의 초창기 개발자로 기억을 하고 있으며 그 이후로 많은 음식점들에서 시도하거나 몇 차례 제공한 적은 있으나 담는 과정의 번거로움이나 여러 이유로 지금은 거의 이시돌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물론 필자가 다녀 본 곳 들 중에 한해서이다.

어쩌면 이 한옥이 아직도 건재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전국에서 이어질 수 있음은 이처럼 묵묵하고도 꾸준히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함이 있기에 가능한게 아닐까?

다음 꽃 축제는 또 무엇이 있을까라며 두리번 거리고 여기 오지 않고 거기에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며 칭얼거리는 필자의 방정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이시돌의 별미 김 장아찌


또 하나의 볼거리

이시돌에는 안채에서의 식사 말고도 또 한 곳의 여유 공간이 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랑채 공간이 있다.

한국의 120여년을 사진으로 꾸며 놓고 우리의 추억을 자극한다.

흑백사진으로 전시된 공간에서 눈을 바꿔가며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배움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젊은 아낙이 머리에 채반을 이고 젖을 덜렁 내 놓은 채 너무나 당당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또 다른 문화의 충격이기도 하다.

사고 나니 벌써 구형이라는 현대의 문화에 사는 필자는 울퉁불퉁한 주변의 흙들을 모두 걷어 올려 자신이 모두 짊어지고 있으면서 용방, 광의, 간전, 토지, 마산의 구례 평야들을 만들어 주고 의연한 자세로 평야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윽히 바라보는 지리산의 대범함을 배운다.

아가! 사람은 모름지기 찐득한 맛이 있어야 되는 법이다.

음식점정보: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 411-1, 061)782-4015, 산채정식, 도토리묵, 차, 한방갈비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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