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남도방송] 예전의 날씨는 특히,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는 3한4온도 분명했고, 4계절의 구분도 분명하여 계절마다, 그 특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세월을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봄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함박눈은 그런 모든 것 중에서도 우리를 감흥에 빠지게 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요즘이야 그런 때와는 완연히 달라져, 엉뚱한 기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시 4월에는 꽃이 좋고, 5월의 신록은 참으로 아름답고 헌사롭습니다.

싱그럽고 찬란한 신록의 계절인 5월도 이제는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5월은 아름답고 찬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픔과 슬픔으로 아로새겨진 달이기도 했습니다. 유혈이 낭자했던 80년 5?18의 비극, 어느덧 2주기로 접어든 5?23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우리가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절에는 다산의 짤막한 편지 한통이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무척 애타게 기다리다 너희들 편지를 받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나. 둘째의 병이 아직 덜 나았고 어린 딸아이의 병세도 나빠지고 있다니 걱정이 크다. 내 병은 약을 먹고부터는 그런대로 나아지는 듯하고 공포증과 몸을 반듯이 세울 수 없던 증세도 호전되었다.

다만 왼쪽 팔의 통증이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어도 점점 차도가 있는 것 같다. 이 달에 들어서는 공사(公私)간에 슬픔이 크고 밤낮으로 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으니 이 어인 신세인가. 더 말하지 말기로 하자.(1801. 6. 17)”라는 편지글입니다.

1801년 ‘신유옥사’를 당해, 그해 2월 경상도 포항 곁의 장기라는 외딴 바닷가로 귀양 가서 살던 다산이, 고향의 아들에게서 소식을 받고는 답장으로 보낸 편지였습니다. 둘째 아들과 딸아이의 병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초봄 국문(鞠問)을 받느라 모진 고문에 망가진 자신의 몸이 약을 복용한 뒤 차차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썼던 6월은 바로 지난해 6월 28일 다산을 그렇게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던 정조대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달이었으니, 그 일주기를 맞는 다산은 돌아가신 정조를 그리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그 비통한 심정을 간단명료하게 기록했습니다.

“밤낮으로 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으니 이 어인 신세인가.”라는 말끝에 “더 말하지 말기로 하자(不多及)”라는 세 글자로 서신을 맺는 다산의 아픔이 지금에도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5?18의 아픔까지 오버랩 됩니다.

31년 전 5?18에 죽어간 제자나 후배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노대통령과의 생전의 인연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5월은 가고 있지만, 5월에 얽힌 추억과 회한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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