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달맞이 흑두부의 “삼색나물 비빔청국장”

[맛집/남도방송]자리에 앉으니 생활한복으로 다소곳이 차려 입은 여자 분이 가까이 다가와 콩비지로 만든 죽을 제공하며 세팅지로 상차림 준비를 한다.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 高會夫妻兒女孫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세팅지에 새겨진 문구로 이 집의 음식과 관련된 추사(秋史) 김 정희(金正喜)의 생각을 인용했다.

추사가 71 세로 사망하기 두세 달 전 절필 직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서로 고택에 주련(柱聯)으로 쓰여 있는 글 중의 하나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최초로 흑두부를 개발하고 체인점 몇 군데가 있다 알려진 화순의 달맞이 흑두부 본점을 찾아 두부가 아닌 삼색나물 비빔청국장을 청해본다.

콩비지의 변신 “비지해물파전”

지인 1명과의 동행으로 메인 주 요리를 주문하지 못하고 결국은 다양한 음식 들을 섭렵하기로 결정한다.

먼저 눈에 번쩍 뜨이는 메뉴, 비지해물파전을 주문해 본다.

받침으로 사용하는 채반을 벗어날 듯한 크기로 널직한 지름에, 과장을 약간보태자면 어른의 한 뼘은 족히 되고도 남을 정도의 두께이다.

노릇하게 바삭한 시각적 느낌에 작은 새송이 버섯을 세로로 막 썰어 둥근 원형의 섬을 만들고, 촘촘하게 박힌 오징어의 살과 발들이 쭉죽 늘어뜨리며 부추와 파 사이를 유영하는 모습, 마치 바다 속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한족 귀퉁이를 살작 건드리니 툭 잘린다.

보통 밀가루 파전의 끈끈함에 쫄깃함을 연상하다가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그제서야 비지파전을 주문 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팬에 두른 기름이 깊숙한 두께에 충분히 배어들어 바삭함을 충분히 이끌어 내면서도 콩 본연의 고소함은 제대로 유지를 한다.

마치 통의 검정콩을 볶아서 간식으로 먹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콩의 맛이 충분하다.

오징어의 쫄깃함이 씹히는 맛을, 쪽파와 부추가 상큼함을 품어내며, 버섯의 은은함이 동동주를 절로 부른다.

애써 동동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상큼한 김치에 곁들이고, 마알갛게 물오른 조선장에 담백한 향을 즐겨 보기도 한다.

이 두툼하고 널직한 그러면서도 콩비지가 주재료인지라 찰기가 무척 적은 이 비지해물파전은 누가 부치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아무나 이 파전을 요리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한 번 뒤집으려면 쪼개지고 부서져서 해물 따로 야채와 비지가 따로 놀기가 십상이어서 숙련된 이가 아니면 쉽지가 않다는 말이다.

두부를 만들고 난 비지를 찌개에 해물을 첨가하는 국을 끓이는게 일반적인 요리이련만 새로운 변신과 새로운 음식의 세계를, 새로운 또 하나의 맛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추사(秋史)의 밥상

주문했던 비빔청국장 상차림이 차려진다.

따뜻한 밥에 된장국이 나오고 비빔그릇에 잘게 잘린상추에 들깨가루가 얹어져 나온다.

비빔용으로 고사리, 콩나물, 미나리가 나물로 무쳐져서 나오고 무채에 배추김치, 오이가 겉절이 무침으로 나온다.


도자기 뚝배기에 청국장이 자박하게 끓여져 나오니 상차림의 완성이다.

비빔그릇에 밥을 붓고 청국장을 국자로 듬뿍 쏟아 붓는다.

진하지 않게 쾌한 청국장 특유의 향에 군침이 솟는다.

삼색 나물을 약간씩 넣고 힘찬 숟가락질로 비비고 또 비빈다.

나물에 밥에 청국장에 온통 범벅된 수저에 밥을 듬뿍 쌓고 생 배추김치를 한 조각 올리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경지이다.

세상에 나오면서 부처가 일갈한 의미와는 전연 다르지만 한자의 의성만을 일컫자니 같이한 이가 눈에 띠지 않을 정도의 무아지경이다.

무 생채에도 한 수저, 오이 겉절이에도 한 수저, 생 배추김치에 또 한 수저 들다보니 수저질의 그침이 없다.

모르고 먹기 시작했는데 먹다보니 세팅지에 알려진 추사 김 정희가 칭송한 좋은 식단 그 자체이다.

두부는 아니지만 주재료 콩은 같으니 50보 100보라 자위하며 생각해 본다.

추사 김 정희는 왜 산전수전 다 겪은 70이 넘은 나이에, 그 것도 유배에서 해배된 상황에서 이러한 글을 썼을까?

그에게 이 음식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스토리가 내는 음식의 맛

알고 찾은 집이 아니었음에 필자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 준 음식이다.

아는 만큼 만 세상이 보인다 했던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접한 음식인지라 주인장에게 마저 묻지를 못하고 왔다.

정리를 하면서 나름대로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는 했지만 주인에게 미처 많이 물어보지 못 했음에 아쉬움이 남고, 스토리를 알고 먹었다면 음식의 맛은 또 어떻게 변할까라는 기대를 남긴다.


어느 지인의 일화가 떠 오른다.

각자가 한 가지 음식들을 가져와서 펼쳐놓고 나누어 먹는 자리.

타인들의 음식은 다 동이나 가는데 지인이 가져 간 못 생긴 감자들 만 천덕꾸러기가 되어 갈 상황.

지인의 부모님이 식구들 만을 위해 재배한 무공해 유기농감자라는 말에 어느새 못생긴 감자가 동이 나더라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스토리는 어떠한 손 맛도 이길 수 있는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제 3의 맛이다.

다시 한 번 달맞이 흑두부집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 번에는 좋은 식단 뿐 아니라 훌륭한 모임을 위해 부모님을 위시해 온 가족이 함께 좋은 식단을 즐기며 추사 김 정희의 생각을 체험 해 보리라.

음식점 정보: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573-41, 061)375-8465, 흑두부요리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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