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께서 어느 날 제자 이중구(李仲久:湛)가 보내온 편지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두고 쓰는 말이 있는데,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못하네’라고 모두 말한다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탄식이 있다네.그러나 탄식의 내용은 다르다네. 일반사람들은 자신들의 포부를 알아주지 못함을 한탄하지만, 나의 경우는 학문이나 능력이 텅텅 빈 사람인데도 그런 줄을 알아차리지 못함에 대한 탄식이라네.”라는 내용의 답장입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에 대하여, 다산은 그의「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이라는 글에서 퇴계의 겸손한 마음과 깊은 학문에 대하여 세세한 평설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선생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겸손한가를 사실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실제로 그런 걱정을 지닌 사람이 있다. 대체로 헛된 명성 때문에 비방을 받기 마련이고 화를 당하게도 된다. 나 같은 사람은 평생에 총명의 재능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은‘기억력이 뛰어나네’라고 말하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모르는 사이에 땀이 나고 송구스럽다. 이를 태연히 인정하다가 남들이 속아줌을 즐기다가 진짜 큰 일을 맡겨주는 경우 군색하고 답답함에 몸 둘 곳이 없을 터이니 매우 두려운 일이다.”(도산사숙록)라는 다산의 해석이 있습니다. 이어서 다산은 퇴계의 겸손미를 극구 칭찬하면서, 자신이 의지하며 돌아갈 곳이 퇴계뿐임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 선생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학문과 계왕계래(継往継來)의 대업을 이룩한 분이면서도 오히려 자신은 공소(空疎)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 세상에서 자신의 포부와 능력을 알아주지 못함을 한탄하지 않고서, 겸손하기 짝이 없던 군자(君子)였으니, 선생이 아니고서야 누구를 의지하여 돌아갈 곳이 있겠느냐’는 탄식을 토로하였습니다. 군자가 지녀야 할 가장 큰 덕의 하나는 바로 겸손이라는 것을 다산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자(孔子)는「논어」의 허두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사람이 군자니라(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고 명확하게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지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야 많겠지만,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오만방자한 인간들에게서 시작됩니다. 당쟁이나 사람 사이의 싸움, 나라 사이의 싸움 모두가 자신을 가장 많이 알아주고, 가장 높이 평가해주라는 데서 투쟁이나 전쟁은 시작됩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포부를 알아주지 못함에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능력이나 계책이 없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퇴계의 겸손한 마음을 부러워하는 다산의 뜻은 더욱 미덥기만 합니다.

옛날의 시조에,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이 가는이 흙이라 하는구나, 두어라 알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참으로 능력이 있고, 포부가 훌륭하다면, 언젠가는 세상에서 알아주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조용하고 평안하기 위해, 제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마음을 가라앉히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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