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탄식입니다. 얼마나 마음에 흡족하고 옳은 생각이라고 여겼으면 이런 탄식을 했을까요. 다산은 공자나 맹자의 경전(經傳)을 읽고 풀이하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딱 들어맞으면 지체 없이 솔직하게 탄복하는 말을 풀어놓습니다. 『맹자요의 (孟子要義)』라는 『맹자』에 대한 다산의 연구서에는 여러 곳에서 그런 탄식이 나옵니다. 「진심장(盡心章)」에 나오는 「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무위기소불위 무욕기소불욕)을 풀이하는 대목에서 다산은 대단히 격정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그만큼 다산의 마음을 감동시켜주기에 충분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는 맹자의 말씀을 다산은 심도 있게 관찰하여, 그 의미를  부연하면서 유교의 핵심이론이 그 안에 담겨있다고 여깁니다. 공자·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  등의 성현들이 서로 전해주었던 비밀의 열쇠 같은 유교의 요지(要旨)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두 가지의 마음을 다산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상반된 두 의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여기가 인간과 귀신 세계를 가르는 관건이며 선악이 갈리는 곳이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싸우는 곳이며 의(義)와 욕(欲) 중에 누가 이기느냐가 판가름나는 지점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온갖 힘을 기울여 이기적 욕망을 극복하면 도(道)에 가까이 가게 된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고 욕심내서는 안 될 일을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은 도심(道心)이 발한 것이니 곧 천리(天理)이다. 내서는 안되는 욕심을 내는 것은 인심(人心)이 발한 것이니 사욕인 것이다. 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음은 인심을 극복하고 제압하여 도심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그래서 맹자는 ‘이것일 뿐이다 (如此而已)’라고 했으니, 이를 보면 도(道)는 이에 벗어나지 않으니, 오호, 지극하도다 ! (鳴呼至矣)”

다산의 탄식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사욕을 이기고 예(禮)를 회복하는 일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극점입니다.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기만 하다면 인간의 능사(能事)가 지극함에 도달한다는 것이니, 그 얼마나 지극한 일인가요. 역사와 인간의 불행이나 비극은 그 출발이 사욕에 있습니다. 나라나 사회의 문제점도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해버리고, 하고 싶어서는 안 될 바를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것을 극복하는 ‘극기(克己)’의 인간이 많은 나라가 될 때만 세상은 달라진다는 다산의 뜻이 아닐까요. 지극함에 이르기 위해서라도 극기 공부에 나날이 매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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