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에서 좋은 책이 또 나왔습니다. 책의 출간을 축하하는 뜻으로 저자와 함께 몇 사람이 모여 저녁이나 하자는 한길사 직원의 연락을 받고 나갔더니, 저자는 바로 저의 외우(畏友) 송재소 교수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한국한시작가열전』인데, 부제는 ‘송재소와 함께 읽는 우리 옛시’ 였습니다.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한문학을 전공한 송교수는 한 평생을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한시를 연구하고 강의했던 한학자였습니다. 정년퇴임한 뒤에는 명예교수로서 더 바쁘게 강의도 하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대학원에서 「다산문학연구」로 최초의 석사 · 박사학위를 취득한 선구적 학자가 바로 송교수입니다. 다산시를 연구하여 학위를 얻은 뒤에는 한국 한시 전체를 연구하여 그 분야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다산시 연구로는 더 큰 명성을 얻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치원에서 황현·신채호에 이르는 26명의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고 해석해서, 우리글로 한시를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한결 쉽고 편하게 번역된 책입니다.

 

                               수심에 싸여

               호랑이가 어린양을 잡아먹고는                     虎狼食羊羖
               입술에 붉은 피 낭자하건만                          朱血膏吻唇
               호랑이 위세가 이미 세워졌는지라                 虎狼威旣立
               여우· 토끼, 호랑이를 어질다 찬양하네.          狐兎贊其仁
   
                                                                                              「憂來十二章」

다산의 우화시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아주 짤막한 시인데, 송교수의 평설이 너무 멋져서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이 시에서는 대립의 양상이 좀 더 노골적이고 대담하다. 이 시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호랑이는 봉건 지배층을, 어린양은 힘없는 백성을, 그리고 여우와 토끼는 아첨을 일삼는 간신배를 각각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1980년 5월의 광주가 연상된다. 누군가의 지시로 수많은 시민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는데도 주위에 있던 여우와 토끼들이 ‘각하 훌륭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라고 말했을 당시의 장면이 어쩌면 다산의 시와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라고 해석했습니다. 다산의 ‘촌철살인의 현실비판’을 예리하게 간파한 송교수의 시적 안목이 참으로 높기만 합니다.

옛날의 한시란 어렵기도 하지만 낡은 문학이라 여겨, 읽거나 음미해보려는 염사조차 없는 오늘의 시대에 고전문학의 진수를 훌륭하게 이해하고 풀이하여, 그것을 후학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송교수의 뜻은 곱기만 합니다. 유려한 번역의 솜씨도 뛰어나지만, 한시의 깊은 맛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풍부한 주석을 달아 자연스럽게 설명해주는 친절미는 더욱 값지기만 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즐겨 읽어서 우리나라 옛 시인들의 수준 높은 시세계에 접근하도록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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