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진 전남시민단체연대 공동대표

[칼럼/남도방송] 여수에 부임한지 1년도 못되는 기관장께서 여수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대뜸 '조식의 칠보시를 아느냐?'고 하였다. '칠보시'라는 것은 7 걸음 걷고서 지어낸 시라는 뜻이다. 7 걸음만에 시를 지었다는 것은 대단한 문장가라고 할 수 있다.

조식(曹植, 192~232)은 중국 삼국시대 문장가로 그 유명한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다. 워낙 재주가 뛰어나 조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형 조비(曹丕)의 질시와 견제를 심하게 받았다.

조비는 나중에 왕위에 올라 위(魏)나라의 문제(文帝)가 되었다. 왕위에 올랐어도 뛰어난 동생이 언제든지 반역을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없애버리려고 한다. 어느날 꾀를 낸 것이 일곱 걸음 안에 시를 한편 지으라고 하고, 만약 짓지 못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도저히 지어낼 수 없는데 그것도 큰 뜻을 지닌 칠보시를 조식은 지어 냈다.

칠보시(七步詩)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上煎何太急(상전하태급) 서로 들볶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지.

이 시에서 콩대는 형 조비이고, 콩은 동생 조식을 뜻한다. 콩과 콩대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콩대는 콩을 삶는데 필요한 땔감으로 사용한다. 콩대를 때서 콩을 삶을 때 콩 속의 수분이 꼭 눈물처럼 나온다. 콩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한 뿌리에서 난 사이인데 콩대가 자신을 삶아 못살게 들들 볶아댄다고 생각한다.

이 칠보시는 형제간에 못살게 들볶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형 문제 조비는 이 시를 보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

외부인에 비친 구 여수와 여천시의 갈등은 어떻게 비춰질까?

그 기관장은 여수는 3려 통합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정치권과 지도자가 여수, 여천으로 나뉘어서 싸운다는 것이다.

앞으로 광양만권 통합을 하면 여수가 중심 역할을 해야 할텐데 여수가 이렇게 분열이 되어서 어떻게 도시를 발전 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줄곧 산 시민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애써 분열이 있을 수 있느냐고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칠보시에 나오는 것처럼 여수와 여천은 뿌리가 같은 한 형제인데도 서로 들볶으고 산다는 뜻에서 칠보시를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는 9월 9일이면 여수시가 통합된지 14주년이 된다. 주민투표법이 생기기 전에 여수시민이 투표를 해서 통합이 된 것이다. 전국 최초로 주민이 나서서 행정구역 통합을 이뤄낸 위대한 시민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 바로 여수이다.

최근 서울에서 무상급식에 대해서 주민투표를 할 때처럼 통합 반대를 하던 측에서 투표 거부 운동을 하였다. 그동안 3차례 무산을 시켰지만 시민들이 나서서 4번째는 통합을 성사시켰다.

그 기관장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시 4차례에 걸쳐 극렬하게 통합을 반대하였던 인사들 중 일부가 3여통합 6개항 이행을 촉구하면서 아직도 소지역주의가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청사는 새로 짓지 않았지만 약속대로 '여천시청으로 한다'를 지켰다. 청사가 비좁아서 일부가 옛 여수시청사와 여천군청사에 있지만 대부분은 현 시청에 있다.

청사를 새로 지으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가 되고, 그 비용은 국고에서 지원이 되지 않는다. 청사를 짓기 위해서 발행하는 지방채를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행정 집행 방식이 바뀌고 있는 마당에 청사부터 지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장 박람회가 끝나면 30만이 미달되어 1개 국을 없애고, 임시 부서도 없애야 한다.

무선과 소호, 죽림, 웅천 등 잇따른 신규 택지 조성으로 옛 여수시 인구 상당수가 옛 여천지역으로 이동해왔다. 사실상 계속 여천시쪽에 살았던 사람보다 새로 이사온 사람이 비슷해져서 지역색이 크게 옅어졌다. 여수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시청사가 있는 여천쪽으로 넘어왔다.

공동화 현상을 빚고 있는 구도심은 박람회장이 가까이 있어도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기관과 공공시설, 메이커 상가 등 주요 상권이 여천으로 중심 이동을 했다.

그런데도 그 기관장의 지적대로 아직 여수와 여천으로 나뉘어져 있다면 그것은 크게 정치권과 교육제도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구가 갑, 을로 크게 보면 여수, 여천 각각 1명씩이어서 도의원, 시의원까지 나눠진다. 특히 시의회에서 지역 관련 각종 투표를 할 때 여수와 여천으로 갈리는 것은 지역구 때문이다.

교육제도 역시 행정구역은 통합이 되었는데도 중학교 학군이 옛 여수시쪽은 1학군, 옛 여천시쪽은 2학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까 옛 여수시 쪽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옛 여수 쪽 중학교로, 옛 여천시 쪽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옛 여천시 쪽 중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옛 여천군쪽 초등학교는 근방 중학교로 진학한다.

얼마 전 통합한 초등학교 교원 인사구역과 다르게 중, 고등학교 교원 인사구역은 여수, 여천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천쪽은 농어촌지역이라고 해서 승진상에 부가점까지 있어서 교원들은 여천쪽에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를 대면 전국 최초 주민 자발적 행정구역 통합 의미를 살리지 못한데 있을 수 있다. 전국에서 자발적 행정구역 통합 선진지역이라고 해서 견학을 오거나, 여수에서 전국적인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위대한 시민 정신을 알 수 있는 시설이나 흔적이 없다.

통합이 되면서 지나치게 반대를 하던 인사들을 의식해서 그 당시 시장이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고, 기념 시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주민투표를 한 날을 기념해서 그날을 '여수시민의 날'로 하자는 주장도 여수시와 여수시의회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10월 15일날로 정하였다.

그 날 이후 관에서는 어떠한 기념 행사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통합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가 매년 9월 9일 기념 행사를 하면서 그 날을 기리고 있다.

어느 지역에 가도 그 역사적인 날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 시설이 있다. 그러나 여수는 간단한 기념비도 없고, 기념관조차 없어 통합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을 전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일들을 추진하기 위한 '3려통합 정신 기념회' '3려통합 정신 기념재단'도 없다. 그러하니 그것을 기념하는 사업을 위한 조례가 있을리 없다.

이런데도 어떻게 시민이 화합할 수 있고, 시민 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박람회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정신이 중요하다.

여수시민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바로 한 뿌리였던 형제들이 군사독재자 전두환 때문에 흩어졌다가 어렵사리 하나가 된 '3려통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역 정치권이 몇 사람을 의식해서 스스로 외면하고 있다. 아전인수 격으로 아쉬울 때만 시민화합, 시민 정신을 내세우고, 뜻을 관철시킬 때는 어김없이 소지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아쉽게도 얼마 전에 광주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행정구역개편추진위원회' 광주 공청회에 여수에서 몇분이 참석하여 여수의 '3려통합'은 실패한 것이라고 발언을 하여 그 자리에서 참석한 학자, 관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행정학 교과서와 논문에 여수의 '3려통합'은 시민 자치의 모범 사례로 나와 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만약 '3려통합'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시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더욱 문제가 된다. 

지금 여수는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시민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고,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를 시민들은 다 안다.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은 서둘려서 보완을 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은 지역을 혼합해서 해야 하고, 중학교 학군과 교원 인사 구역도 통합을 해야 한다.

시민화합과 시민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3려통합 정신'을 기념하는 행사와 단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은 소지역주의와 지역색을 부추키는 발언을 삼가해야 한다.

지역이 화합해야 할 때이다. 그 기관장 말처럼 조식의 '칠보시'를 틈나는대로 읽어야 한다.

이제 박람회 개최 이후로 교통 사정이 나아지면 더 많은 시민들이 여수를 떠날 것이다. 옛날과 달리 조상대대로 산다는 개념은 없어지고, 시민을 만족시킬만한 특별한 혜택이 없으면 가까운 지역으로 쉽게 이사를 간다. 땅값이 싸고, 집값이 싸거나, 생활비가 적게 들어야 하고, 각종 문화 예술 시설이 많아서 삶의 질이 높아지거나, 자녀 교육을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시킬 수 있거나, 일자리가 많아서 경제적으로 윤택할 수 있는 혜택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인구 유입이 아니라 있는 인구 빼앗기지 않는 정책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이순신대교 건너 광양 중마동과 순천 신대지구 아파트 값이 싸다면 이사 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

무언가 여수에 사는 사람에 대한 혜택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교통카드로 시내버스를 타면 순천시는 100원 할인에 1시간 안에 무료 환승이고, 여수시는 50원 할인에 30분 안에 무료 환승이다. 시민을 감동시키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박람회 때문에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은 시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박람회가 유치되면 뭔가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땅값과 아파트값만 올라가 세금을 더 내고, 집세를 더 내야 한다. 따라서 음식점 음식값도 올라서 생활비가 더 든다.

박람회장 공사판에 여수의 기업들이 참여할 줄 알았는데 공기가 급하다고 해서 참여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박람회 기간 동안 여수시민에게 입장료를 면제해주거나 특별 할인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혜택도 없다. 엑스포 덕 좀 볼 줄 알았는데 사후 활용에 대해서도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있어서 시민들의 엑스포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엑스포 때문에 예산이 없다고 하면서 전남도내 목포와 나주, 광양시에서 실시하는 시내지역 초등학교 무상급식도 미뤄지고 있다.

지도자들은 '시민이 등을 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 옛날처럼 무조건 따르거나, 절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거 시장과 정치인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손가락은 하나이지만, 나머지 네개 손가락은 내게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남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