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벼슬살이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녹(祿)을 받지 않고서는 생계가 어려워 하게되는 벼슬살이는 가능한 낮은 지위, 즉 책임이 가벼운 일을 해야 하고 고관대작의 벼슬을 하려면 세상을 경륜할 능력을 지녀 도(道)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도를 행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녹을 타려고 능력도 없이 큰 벼슬을 탐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율곡 이이 선생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함이 지나쳐 훌륭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벼슬은 모리배들이나 하는 일이지 진짜 선비는 할 짓이 못된다며 임천(林泉)에 숨어사는 일 또한,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율곡도 지적했고 다산 정약용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 동쪽을 향하고 있으니 분명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과 더불어 우리는 정치의 계절을 맞았습니다. 한성판윤의 보궐선거가 곧 있고, 내년이면 총선에다 대선까지 이어져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이런 계절에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할 몇몇의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신물 나는 구 정치 행태에 대한 따가운 질책이기도 하겠지만, 이로 인한 검증 없는 선거의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을 하겠다고 몇 십 년을 벼르던 인물들이 사양길에 섰는데, 정치와는 무관했던 재야의 인물들이 여론의 상위를 점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대체로 겸양[謙]이란 글자 하나는 온갖 선(善)이 모이는 터전이기는 하지만, 만물의 뜻을 개통시키고 천하의 사무를 성취시키(開物成務)는 업을 발휘하고 선양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선비가 인격의 함양을 귀히 여기는 것은 앞으로 실제의 국사(國事)에 수용(需用)하기 위함이니, 이는 대개 동정(動靜)에 통하고 체용(體用)을 갖추어 빛나게 자신을 완성하고[成己] 남을 완성시켜주는[成物] 쓰임[用]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산이 도만 닦으며 재야에 숨어살던 방산(方山) 이도명(李道溟) 이라는 선배 학자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겸양이 너무 지나치고 함축이 너무 깊어 남을 이끌어주고 깨우쳐주는 일에는 전혀 점검함이 없는 것 같은데, 이는 아마도 사리를 극진하게 분별하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라며 은일군자로 숨어사는 학자에게 해준 말입니다.

도를 행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천하국가를 경륜할 뜻으로 고관대작에 오르려면 다산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물성무’의 업을 이룩할 자신이 있는가, 시조(時措)에 수용되기 위한 함양을 충분히 했는가. 통동정(通動靜) · 구체용(具體用)하여 성기성물(成己成物)의 학덕과 능력을 구비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즉, 참다운 내공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를 무조건 혐오하고 벼슬은 볼썽사나운 정상배들만 한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닦지 않고 정치에 뛰어드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말에 진정성이 있는 사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백성들이 고르게 살아가게 하려는 의지가 진심으로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여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를 이번 선거에서 이루었으면 합니다. 좋은 분들이 여론의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정치에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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