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는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 시·소설·수필·희곡·평론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예부터 시야말로 문학의 대명사요, 시인을 문학가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양에서는 유독 시에만 경(經)이 있어, 유학의 기본 교과서인 4서6경에 『시경(詩經)』이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시가 가진 위상은 높았습니다. 중국이나 조선에서 학자나 문인이라고 하면 『시경』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고, 또 글을 남긴 사람으로서 시를 남기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는 문학에 있어서의 보편성을 지녔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 정약용도 2500수가 넘는 방대한 양의 시를 남겼습니다. 다산은 음풍영월이나 담기설주(譚棋說酒)만의 시여서는 안되고,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내용을 주제로 한 시여야 참다운 시라는 시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항상 힘없는 사람을 구원해주고 재산 없는 사람을 구제해주고자 마음이 흔들리고 가슴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지녀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寄二兒)라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나 달을 읊거나 장기 두고 술 마시는 내용의 시는 그렇게 큰 의미의 시가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전 ‘희망버스 기획한 송경동 시인’이라는 와이드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다산이 떠난 지 200여 년이 지난 오늘, 다산의 시론에 합치되고 다산의 의중과 뜻을 이어받은 시인이 나타난 것 같아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발이 아파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농성장을 찾아다녔어요.

저는 이상하게 그런 곳이 편하게 느껴져요.”라고 송시인은 말합니다. “잘못된 사회구조가 삶을 가로막는다면 맞서 저항하고 괴로워하는 게 시인 정신”이라고 거침없이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네루다, 푸시킨도 탄광노동자와 농민군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이었다.”라며 세계적으로도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함께 한 시인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희망버스’라는 생경한 발상으로 약자들이 살아가기 척박한 우리 사회에 중대한 화두를 제공한 시인이 송경동 시인입니다. 9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리해고라는 독한 자본의 논리에 아픔을 호소하는 노동자 문제를 세상의 한복판에 등장시켜 사회적 이슈로 만든 것이 바로 ‘희망버스’가 만들어낸 일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우리 사회가 쉽게 이 문제를 풀어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한 시인의 기획으로 이런 문제가 앞으로 반드시 해결돼야 할 국가적인 과제로 등장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시인은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는데, 잠 못들면서 약자들의 농성장을 목발 짚고 찾아다니는 송시인의 수배라도 풀리기를 기원해 봅니다. 아마 지금 다산이 살아 계셨다면, “송시인, 당신 참 옳곧은 시인이네요.”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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