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어느 빵집사장의 골리앗과의 싸움!

<사진> 남도방송 차범준기자[남도방송/차범준기자]금요일...., 해질녘 순천만의 오후!

서걱거리는 갈대밭과 갯벌의 경계면에서 낮게 날아오르는 겨울 철새의 비행과 순천만 겨울 해넘이를 차창으로 지켜보는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는 사치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주어질 리가 없다.

 기사마감이 내일이라며...?

 운전석 곁에 자리한 친구의 거듭된 독려도 있었지만 결국 대책없이 뒤로 미뤄둔 취재는 극심한 주말두통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습 벼락치기 마감 전문기자의 마지막 본능도 순천만의 여유를 접고 도심으로의 귀환을 결정한 동기가 되었다.

 금요일 오후의 운치 있는 순천만 낙조를 포기하게 만든 "골목길 이야기"취재를 위해 시내 연향동으로 향했다.

순천시 연향동 호반아파트 앞,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산자락 여기저기에 시골마을 정취를 보여주던 그 마을들은 지금은 고층 아파트 사이사이에 어색하게 남아있는 한 뼘도 안 돼는 푸성귀 밭에서 그나마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로컬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 기자의 다음 주 방송소재로 준비한“지역 토종 소상인들의 현실”이라는 내용의 취재대상자로 선정한 경력이 30년이나 된다는 빵집 사장을 찾아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연향동 호반 1차아파트 앞 상가에 위치한‘이인수 과자점’..., 상가 앞에서 주섬주섬 카메라며 취재수첩을 챙겨드는데.., 바로 길 건너편 건물 1층에 새로 개업한 화려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OOOO 제과점이 눈에 들어온다.

 저녁 무렵이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빵 봉지를 챙겨들고 가게 문을 나서는 모습을 등 뒤로 하고 문제의 제과점‘이인수제과점’에 들어섰다.

오늘 취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몹쓸 직감”은 언제나... 예외 없이 들어 맞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창 옆에 웅크리고 앉아 초조한 표정으로 길 건너 이른바 메이커 OOOO 제과점을 어두커니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람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두 번 물을 것도 없었다.
“이인수 사장님 맞으시죠?”
“네..! 제가 맞는데요.”
길 건너편 가게에서 겨우 시선을 돌리는 그의 모습이..., 꼭 꿀단지에 손을 댄 아이의 표정이다.

이인수제과점’사장 이인수(45)씨!

여기서..., 빵집에서의 그 어색했던 잠깐 동안의 풍경과 상투적인 인사말들은 과감히 생략하기로 하고...,
어쨌든 그는 얼마 전 바로 길 건너편에 메이저(?)급 빵집이 문을 열던 날, 개업식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봐야 하는 비극의 역할을 묵묵히 잘 넘겼고..., 급기야 앞집 개업식 날 터트린 축포가 고압선을 건드려 근처 가게의 전기가 모두 끊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한, 그 화려한 개업식을 그는 어둠 속 자신의 빵집에서 끝까지 망연히 바라봐야 했다고 했다.

 개업식 축포에 전기가 끊기다.

 하필... 고압선에 축포가 맞아 전기가 나갔다는..., 그 대목에서, 개그콘서트에서 안상태가 나오는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 난~~~, 숨어서 앞집 빵집 오픈 하는 거 구경만 했을 뿐이고..., 갑자기 전기가 나가서 어두워졌을 뿐이고...,”

어쨌든 고압선 전기가 나갔다는 그 대목에서.., 거의 동시에, 함께 간 친구와 방정맞은 웃음이 기어이 터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주인공 이인수씨도 멋 적은 웃음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일단 취재의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긴 셈이다.

가는 날은 꼭 장날이다.!

 내 세울 것 없는 학력에... 오직 가진 기술은 빵 만드는 기술밖에 없다는 그는 지난 30년 동안 줄기차게 빵을 만들어 왔단다.

한 때 지역에 3~4개의 빵집을 동시에 열 정도로 순천에서 제일 맛있는 빵을 만들어 왔다고 자부하는 그가 취재 당일 기자에게 들려주는 얘기는 별로 재미없는 얘기뿐이다.
마침 취재를 갔던 그날 아침 가게에서 빵을 굽는 직원이 사표를 내고 이직을 했다고 한다.역시 “가는 날이 장날이다”는 옛말은 하나도 그르지 않다.

 제과업계 종사자들의 자부심...? 이제 옛 말이다.!

 사장의 말에 따르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술로 여겨져 왔던 제과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제과기술로 제과점을 차린 지역 점주들의 운명도 길 건너편 메이저 빵집들의 공세로 이미 지리멸멸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소 점주들의 가게에서 일하는 제과업 종업원들 역시 같은 운명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몇 년 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제의 드라마 M본부의‘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처럼.., 화려한 개릭터의‘파티쉐(제과기술사)’ 김삼순이나 그녀를 사랑했던 천상의 남자 ‘현빈’은 현실에서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이인수 사장의 말에 따르면 화려한‘파티쉐’를 꿈꾸며 빵을 반죽하던 제과 기술자들의 손에는 이제 공사장의 곡괭이며 삽자루들이 들려진다고 한다.

 30년 경력의 제과 기술자이며 이제 어엿한 지역에서 잘 나가는 제과업계 사장인 그의 인생에도 적지 않은 부침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그의 나이 열다섯 살!

10년 동안 남의 빵집 종업원으로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모아 자기이름을 건 빵집을 내려는 순간,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당해 그 돈을 모두 잃고 오히려 큰 빚을 지기도 했단다.

 겨우 목숨을 건지고 병원에서 나와 가까운 친지들의 십시일반과 골목달음으로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 순천여고 근처 옆 샛길에..,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말 손바닥만 한 빵집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웅담의 초기시절이 항상 비극으로 점철되듯 그에게도 파리 날리는 막장‘체험 삶의 현장’(필자가 패널로 출연하는 방송사가 K본부인지라 그곳 방송을 가급적 자주 언급할 예정임)의 상황을 몇 달간 경험했다고 한다.

 그에게도 꽃피고 찬란한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빵집에서 죽 쑤는 격’인 몇 달간의 처참한 참패의 시간 속에서도 그에게 아름다운 봄날은 어김없이 찾아 왔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명의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공개적인 취재에서 거론할 정도의 그녀라면.., 분명 그의 부인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한영애(38), 일곱 살 나이 차이가 난다는 그녀는 지금 열다섯 살과 열 한 살, 두 아들의 엄마이고 그의 부인이기도 하다.

 그 어려운 시절의 어느 날의 사건!

 훗날 장모가 되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날이면 날마다 그‘죽 쑤는 빵집’에서 어느 날 인가는 사위 몰래 빵을 한 리어카나 사갔다는 대목의 추억담 부분에서는 마침 옆에서 빵집 일을 거들고 있다는 처형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당시 거의 날마다 엄마나 동생이 가져온 제부 빵집의 빵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있었어요.”
처형의 똑 떨어지는 증언이니 만큼 믿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처갓집 말뚝보고 절해야 할 사람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낮 간지러운 일곱 살 차이의 마나님과의 연애 이야기는 본지의 기사 댓글에서 그의 안티팬을 양산해 낼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적당히 각설하기로 하고, 여하튼 ‘파리 날리는 가게의 참상’을 극복하기위해 그는 매일 새벽에 가게 앞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무료 시식용 빵을 나눠줬고 조금은 진부했던 그의 새벽 홍보 이벤트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빵집은 요즘말로 대박이 났다고 한다.

 승승장구 이사장! 시대의 변화 앞에 시련을 맞다!

 승승장구 이 사장...! 그 후로 얼마동안 순천 시내에는 그의 손으로 일군 빵집이 몇 개나 생겨났고 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앞날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그 시절! 시내 곳곳의 아파트 앞 상가에, 또는 동네 골목길마다 자리했던 고만고만한 빵집들도 이 사장과 비슷한 꿈을 구면서 저마다 구수한 빵 내음을 이웃에게 전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봄날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장과 동네 빵집 사장들의 봄날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이른바 메이커 빵집이라는 OOOO 제과점과 ㅁㅁㅁㅁ 제과점 등 거대자본을 앞세운 융단폭격 방식의 영업 전략에 지역의 동네빵집 들이 하나 둘씩 백기를 들며 항복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그는 화려한 포장지는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따듯한 이웃의 정을 함께 구워 온 이른바‘골목길 빵’브랜드가 자신의 주변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모습을 최근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백전백승! 그 무시무시한 골리앗의 싸움상대로 그가 지목된 것이다.
30년 경력의 백전노장 빵집 사장에게도 이번 골리앗과의 싸움은 버거워만 보인다.

빵집 창문에 할인판매라는 프랑카드도 걸어보고.., 몇 가지 행사도 기획해 보았지만 그가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 동안 인근 주민들과 마음으로 정을 나눠 왔다고 생각했는데..,빵 꾸러미를 들고 가게 앞을 무심히 지나는 단골손님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미련은 없다!.... 하지만,

 그는 최근 30년 동안 키워 온 그의 이름을 건 빵집의 문을 스스로 닫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봤다고 했다.
굳이 서운함은 없단다.
자신이 구운 빵을 30년이나 찾아온 고객들에 대해 마음은 아프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단다.
‘누구의 손에서든 앞으로도 빵을 구워질 것이고 그 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또한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취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빵집 사장인 그가 던지는 한 마디는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던져준다.
“돈을 벌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얼굴을 마주해 온 손님들과의 정겹고 따뜻한 인사말들이 저를 더욱 행복하게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동안 집 앞 골목과 아파트 상가 한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해온 수많은 구멍가게와 빵집들을 그렇게 내 보냈다.
조만간 우리는 지역에서 30년이나 빵을 구워 왔다는 빵집사장 이인수씨를 전업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가 운이 좋아 그의 동료들처럼 공사장으로 달려가지 않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전업한다면 그가 만들어 오던 30년 기술의 빵은 다시는 맛보기가 어려울 듯싶다.

 우리 모두의 집 앞에서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존재감조차 없었던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정겨운 빵집이나 구멍가게, 조금은 어눌하고 무뚝뚝해서 불친절하게 까지 보였던 그 사람들의 모습을 이제는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겨우 마감시간은 지켜졌고, 언제나 그렇듯 이제 기사는 손에서 떠났다.

귀가 길에 친구와 함께 빵집에 들려 그가 가장 잘 만든다는 모카빵이나 하나 사 들고 들어가는 호사를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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