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를 약해서 ‘조폭’이라 말하고, 이들 개인들을 속말로는 ‘깡패’라고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조폭과의 전쟁”이니, “조폭 소탕작전”이니 소란을 피우면서 조직폭력배를 제거하는데 국력을 기울였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조폭’들이 날뛰고 있고, 깡패가 활개 치는 세상이 계속되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로 한심하고 답답한 세상입니다. 며칠 전에도 인천에서 조폭들의 난동이 있었는데, 경찰이 제대로 대처했느냐, 아니면 늦장을 부리거나 겁을 먹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느냐로 경찰 내부의 갈등까지 야기된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불행한 세상입니다.

주로 서양의 개념이긴 하지만, ‘경찰국가’니 ‘야경국가’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인권을 경찰력을 통해 보호해주고 침해받지 않도록 해주는 민주주의가 만개된 사회를 ‘야경국가’라고 말한다면, 백성들의 생명·재산·자유·인권보다는 권력을 보위하고 권력자의 편의대로 경찰력이 동원되는 나라를 ‘경찰국가’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발전사는 결국 경찰국가에서 야경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위 현장에 물대포가 등장하고, 산성까지 쌓여지면서 지금의 시대가 경찰국가인가라는 질문들이 언론에 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 일이 후퇴만 되는가 여겨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전제왕조 국가에서 살아가던 다산은 지금으로 보면 필연코 야경국가를 간절히 원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토호(土豪)들의 무단적인 행동은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승냥이나 호랑이처럼 무섭다. 승냥이나 호랑이의 피해를 제거하여 양처럼 온순한 백성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목(牧 : 목민관·제후·통치자) 이라고 말한다. (土豪武斷 小民之豺虎也 去害存羊 斯謂之牧 : 刑典·禁暴)” 라는 『목민심서』의 이야기는 다산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조직폭력배와 비슷한 토호들의 깡패행위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한 없이 무서운 존재임이 사실입니다. 승냥이나 호랑이와 같다면 그 이상 더 무서운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권력인 경찰력은 바로 그런 승냥이나 호랑이의 피해를 제거하여 일반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야경국가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경찰국가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다산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세상임이 분명합니다.

200년 전에도 실현을 꿈꿨던 야경국가, 그런 세상의 실현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지, 행여라도 권력 보위만을 위한 경찰국가로 가는 길은 하루 속히 차단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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