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의 「청심(淸心)」 조항을 읽고 또 읽으면서, 다산이 바라던 깨끗하고 청렴한 세상은 왜 갈수록 멀어만 지는지 근심과 걱정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孔子)의 중심사상은 인(仁)이라는 글자에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어진 사람은 인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했습니다.

인은 무척 높은 도덕률이어서 다산은 인의 아랫단계인 ‘염(廉)’을 중심에 두고 “청렴한 사람은 염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廉者安廉 智者利廉, 淸心]”라고 표현을 달리 했습니다. 공직자들이 청렴만 하면 나라는 제대로 된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이 살던 시대는 정말로 썩고 부패한 세상이었습니다. 강진에서 귀양살때 큰 흉년을 맞아 일반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는데, 탐관오리들은 더욱 극성을 부려서 백성들이 살아갈 의욕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귀양살이와 병고에 시달리던 다산은 고관(高官)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부패한 시대를 고발했습니다. “이 몸은 풍병이 점점 심해지고 온갖 병이 생겨 죽을 날이 가깝지만, 기쁜 마음으로 유배지에 몸을 묻을 수 있겠으나, 마음속에 서려 있는 우국(憂國)의 충정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與金公厚書)라고 전제하고, 추악한 소리와 고약한 냄새[穢聲惡臭]를 비참해서 듣고 맡을 수 없다면서 탐관오리의 징치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박석무 
   이사장
그때의 편지를 읽어보면 다산이 유배살던 호남에는 큰 근심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민란의 염려고 다른 하나는 관리들의 탐학(民騷와 吏貪)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위당 정인보는 다산이 호남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을 미리 예견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탐학한 관리들 때문에 백성들은 죽어 가는데 그런 실정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당시의 정치에 다산은 한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유독 고관대작들의 부패와 비리가 드러나고 있어 세상이 이렇게 썩고 부패할 수가 있는가를 탄식하게 됩니다.

권력의 핵심들이 뇌물을 주고받은 보도를 접할 때면, 그때의 다산의 탄식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란 이렇게 반복되기만 하는 것인가. 이렇게 도덕적으로 둔감한 지도자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 우국충정에 마음 졸이며 분노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던 다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년 내내 일하고도 연봉 1~2천만 원도 못받는 일용직 근로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득한 세상에 몇 천만 원, 몇 억의 뇌물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성악취(穢聲惡臭)’가 그치게 될 그날을 그렇게도 바라던 다산의 마음이 저리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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