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입니다. 우리 백성들, 얼마나 오랫동안 ‘선치’를 바라고 기다렸던가요. 우리 백성들 뿐만 아니라 200년 전의 다산 정약용도 참으로 간절하게 ‘선치’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선치를 만나지 못한 다산은 “백세토록 선치는 없었다(百世無善治)”라고 탄식하면서 500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어떻게 해야 선치가 올 것인지 그 대안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착한 정치, 잘하는 정치, 좋은 정치의 의미를 지닌 ‘선치’,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의 성인(聖人) 정치 이후로는 잘한 정치가 없었다는 것이 동양의 현인(賢人)들이 주장한 견해였습니다.

역사와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임금이 임명하던 정치지도자들의 시대는 지났고 우리 국민들의 투표로 정치지도자를 뽑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총선이 중요하고 대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는 총선과 대선의 해인 금년, 모두 합심하여 현명한 선거를 치른다면, 행여 ‘선치’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는 심정으로 참다운 선거를 해본다면 어떨까요. 『목민심서』에는 참으로 소박하게 선치가 올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정자(程子)는 정치를 하면서 ‘시민여상(視民如傷)’이라는 네 글자를 써놓고 ‘나는 날마다 이 문구에 부끄러움이 있다’고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은 상처를 입은 사람으로 여기고 그들을 어루만지고 보살펴주는 심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치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면 된다”라고도 했습니다. “정치를 하려면 세 글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맑음[淸]이요, 둘째는 삼감[愼]이요, 셋째는 부지런함[勤]이다”라고도 했습니다. 백성들을 상처 입은 환자로 보지 않고 멋대로 취급하는 사람, 의도 두려워하지 않고 법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백성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청렴하지도 신중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목민심서』의 정신입니다. 그런 사람을 뽑았기 때문에 결국 ‘선치’는 오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위의 모든 내용은 율기(律己)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자기의 사욕을 억제하고 사심(私心)을 죽여 공심(公心)을 회복하고, 만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굳은 각오로 약속을 이행하는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흑색선전이나 색깔론을 덧칠하여 과장과 허위로 상대방이나 반대당을 이기려는 허튼 수작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율기의 덕목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선출하는 한 ‘선치’는 영영 오지 않습니다. 제발 좀 좋은 정치가 왔으면 합니다. 착하고 잘하는 정치 좀 구경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거를 잘하려면 언론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언론다운 언론이 없는 나라, 누가 옳고 바르며,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가를 가려주는 언론이 없는 한 ‘선치’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한국의 메아리 언론이여 ! 시시비비라는 단어는 잊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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