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윤리의식이 타락하여 오륜(五倫)도 무너져간다고 개탄했습니다. “붕당의 화란이 그치지 않아 반대파 정치인을 몰아넣는 옥사(獄事)가 잦으니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이미 무너졌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 입후(立後)의 의리가 밝혀지지 않아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없어졌으며, 수령들이 기생에 빠져 있으니 부부유별(夫婦有別)도 이미 문란해졌다.

귀족 자제들이 교만을 피우니 장유유서(長幼有序)도 파괴되고, 과거제도로 경쟁만을 부치기고 도의를 강론하지 않으니 붕우유신(朋友有信)도 어긋나버렸다”[示兩兒]라고 세태에 분개하면서 자식들이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 박석무
    이사장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끼리 우애하는 사람쯤이야 세상에 많아서 그렇게 치켜세울 행실은 아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형제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기고 조카들이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사촌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기를 친형제처럼 사랑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겨우 집안의 기상을 떨칠 수 있는 것이다”[示二兒家誡]라고 말한 다산의 윤리의식은 참으로 정당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형제애가 얼마나 돈독했는가를 아들들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손암(巽庵 : 정약전)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 학문을 연구하여 비록 얻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상의를 해보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寄二兒]라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정약전·정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인 동포(同胞)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 더 부럽고 감탄을 숨길 수 없는 일의 하나는 아버지 형제의 뜨거운 형제애를 본받은 다산의 두 아들 정학연과 정학유의 지기를 넘어서는 형제애였습니다.

70세의 아우 학유가 세상을 떠나자 노인 학연이 황상이라는 친구의 위문편지에 답한 편지를 읽어보면 그 두 형제 또한 참으로 멋진 지기(知己)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세의 아우 학유와 19세의 형 학연은 아버지를 귀양살이로 떠나보내고, 어머니와 처자식을 거느리며 55년을 함께 살다가 동생인 학유가 형님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형인 학연으로서는 대단한 아픔이었음에 분명합니다.

 “···55년간 칼과 창이 부딪히는 죽음의 불안을 지나고 갖은 위험과 어려움에 처해서도 아우와 더불어 함께 건너왔소. 비록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은 경우에도 그가 죽으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데, 하물며 한배에서 난 아우로 70년간 서로 의지해온 사람이야 오죽하겠소···”(학연이 황상에게 준 답장)라는 글이 사람을 울게 해줍니다. 대를 이어 형제지기이던 정씨 집안의 우애가 정말로 부럽습니다.

오늘의 세상이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한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와 학연·학유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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