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들 ‘경쟁입찰’로 전환…시는 복지부동
‘더 청렴한 신뢰도시 구현’ 민선 7기 시책과 대치
“독점체계 개혁 통해 청소서비스 질 높여야” 여론

순천시 환경미화원들이 이른 아침 주택단지에 모아진 생활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순천시 환경미화원들이 이른 아침 주택단지에 모아진 생활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순천/남도방송] 본지는 앞서 2차례의 기획보도(‘순천시청소대행업체 30년 독점…밀실행정에 가려진 암묵적 카르텔’, ‘순천시청소업체들, 근로자 고혈짜고 혈세는 눈먼 돈?’)를 통해 순천시청소대행업체들의 장기독점에 따른 열악한 근로환경과 미화원들의 인권침해, 혈세를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순천시 청소대행사업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지역에서 소위 ‘유지’ 행세를 하면서 정서 상 납득이 가지 않은 특혜를 받아 왔던 업체들과 순천시, 이들의 공생관계에 시민사회의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됐음에도 업체들에 대한 순천시나 시의회 차원의 전수조사나 실태파악 한번 이뤄지지 않은 현실은, ‘더 청렴한 신뢰도시 구현’이라는 민선 7기 순천시의 핵심정책과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비판이다.

시민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출신의 허석 시장이 수십 년간 관행처럼 이어져 온 청소대행사업의 장기독점 구도에 대해 시민요구에 부합하는 '개혁'을 단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청소업체 계약금 매년 수억씩 증가해도 미화원 건강권은 뒷전

청소대행 업체들은 막대한 이윤을 손에 쥐었다. 매년 70억원 이상되는 보조금의 10%에 가까운 이윤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직원들의 후생복지비까지 어떻게 썼는지 그 쓰임새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사 측의 열악한 처우에도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돼 건강권마저 잃어버린 채 종사하는 미화원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20년 넘게 거리 청소를 하다가 폐암을 진단받은 순천시 환경미화원들이 광주전남에선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아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미화원 서 모·황 모씨는 20년 넘게 거리에서 근무하면서 디젤 차량 배기가스와 석면 등에 노출돼 폐암에 걸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황 씨는 산재 인정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실제 미화원들은 마스크나 장갑 등 제대로 된 안전보호장구 없이 유해물질에 노출된 채 수십 년간을 일해왔다고 토로하고 있다.

2~3년 전부터 방진 마스크와 작업용 장갑이 지급되면서 그나마 근로환경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그 이전까지 안전용품은 근로자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직접 구매해야 하는 물품이었다.

당사자가 직접 소명해야 하는 ‘산재’…“회사는 비협조적”

미화원들이 사고를 당하고도 좀처럼 산재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 역시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환경미화원 3만4000여명 가운데 지난 2015∼2017년 사이 3년 동안 산재를 당한 환경미화원은 1822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8명이다.

노조 관계자는 “황씨와 서씨가 산재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시가 이 분들에 대해 '장기간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것 아니냐'며 터무니없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회사가 산재를 인정하게 되면 보험료 인상 등의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우려 하지 않는다”며 “결국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한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모 업체의 경우 근로자가 근무 도중 사고로 큰 상처를 입었지만 산재처리를 하지 않아 고용노동부으로부터 벌금을 물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원 A씨는 “폐암이나 폐 질환은 CT 촬영으로 판명 여부가 가려지는데 이 검진 비용으로 연간 지원되는 1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현실적인 검진지원비가 지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 동떨어진 정부 정책…근본 원인 해결 없는 땜질 처방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전국민주연합노조 유형봉 순천부지부장.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전국민주연합노조 유형봉 순천부지부장.

정부는 올해 초 환경미화원 안전사고 발생 건수를 2022년까지 90% 이상 감축을 목표로 하는 ‘환경미화원 작업 안전 개선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전장비 미흡’이나 ‘안전의식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열악한 근로환경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노조원 B씨는 “제한된 업무시간 내 최소한의 인력으로 일을 하려면 청소차 뒤편에 매달려가면서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데 정부 방침대로라면 차량 조수석에 승하차를 반복하라는 말인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매달려가다 운행 도중 떨어지거나 회전판에 손발이 끼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빈번하지만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알아서 치료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전국민주연합노조 유형봉 순천부지부장은 “정부 정책대로 하면 업무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며 “출근시간 전 쓰레기를 다 수거해야 하는데 정부 방침대로 하면 절반도 할 수 없다. 정책대로 했다간 쓰레기 대란이 불 보듯하다”고 주장했다.

청소대행사업 변화 요구에 순천시는 '미지근'

경쟁입찰 도입이나 직영전환 등에 대해 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경쟁입찰 참여가 관내 업체에만 국한돼 제한적 인데다 낙찰 지연이나 유찰 등으로 업체선정이 늦어질 경우 사업추진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며 ”경험이 부족한 업체가 선정되면 업무미숙과 전문성 저하로 시민불편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직영전환에 대해서는 ”초기비용이 투자되어야 하고 청소차량 32대가 주차할 수 있는 차고지 조성을 위한 부지확보, 추가 인력 채용과 인건비 상승 등 재정부담을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고지 조성에 따른 님비현상도 따른다고 했다.

‘경쟁 입찰 도입’ 10년 전 환경부 지침에도 ‘복지부동’

환경부가 지난 2009년 조사한 전국 지자체 민간업체 청소대행 현황을 보면 전국 232개 지자체 중 76%가 민간에 청소업무를 맡기고 있다.

이 가운데 95%가 특정 업체와 평균 12년 이상 수의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는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청소대행 서비스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민간 청소업자의 영업구역을 현행 시·군·구에서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변경하는 내용의 폐기물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후 많은 지자체가 경쟁입찰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2011년~), 경남 진주시(2012년~), 경남 거제시(2013년~), 충북 청주시(2014년~), 인천 남동구(2015년~), 경기 광명시( 2016년~), 경기 부천시(2017년~), 부산 동구(2015년~), 부산 금정구(2018년~) 등의 지자체가 대표적이다.

전라권에서도 광주 동구가 2014년, 전주시가 2016년부터 시행 중이다. 가까운 여수시는 지난 2012년부터 여수시도시관리공단(구 여수시도시공사)이 직영하고 있다.

허석 순천시장이 지난해 11월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시내를 돌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허석 순천시장이 지난해 11월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시내를 돌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눠먹기 이제는 안 돼'...자구노력으로 경쟁력 갖춰야 

독점체제가 지속되면 주민 불만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화원들의 열악한 처우와 불안한 근로환경은 결국 청소서비스 질 하락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청소업무를 민간에 맡길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시가 직접 고용해 인력운용과 예산 쓰임새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정부 방침과도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천행의정모니터연대 김혜숙 사무국장은 “청소업체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수 십년 간 수의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배만 불려왔 지 대시민 서비스나 근로환경 개선은 기대할 수 없었다”며 “그들만의 울타리안에서 나눠먹기식으로 해선 안된다. 지역기업을 보호하고 싶다면 이제는 경쟁을 통해 건실한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채찍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에서 최대 현안인 쓰레기 문제에 많은 행정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에서 구태와 부조리 척결이 선행돼야 한다. 청소대행업체 선정 문제에 대해 허석 시장이 현명하게 풀어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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