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목숨 건 멸치조업...어업인 父子의 눈물

수산업법통폐합 시행 10년, 전통어법 고기잡던 어민들 사지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 저질러” 생활형 범죄자 양산
법령 해석 지자체마다 제각각…“현실 맞는 법 개정” 목소리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된 한용선(28, 가명) 씨. 6년 전 수도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용선 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귀향을 결심지만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 없다. 조업에 나선 한 씨 부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된 한용선(28, 가명) 씨. 6년 전 수도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용선 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귀향을 결심지만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 없다. 조업에 나선 한 씨 부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촬영=김성환 사진가)

[여수/남도방송] “예전에는 버스가 하루에 한 대만 드나들었어요. 고기 잡는 것 말고는 먹고 살 것이 없던 동네였지요. 가까운 바다에 그물만 던지면 고기가 넘쳤고, 손만 담그면 조개가 바글바글 했습니다. 지금은 양식장이 들어서면서 바다도 탁해지고, 10여년 전 개정된 ‘수산업법’ 때문에 모두 업을 접고 떠났습니다”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바닷가. 이곳 사람들에게 ‘가막만’이라 불리는 바다는 한 때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청정해역과 갯벌을 자랑하던 곳이다.

용주리 주민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이전부터 어업을 터전으로 살아왔다고 전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10여년 전 만해도 주민수가 150여명이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50여명만이 남아 어업을 잇고 있다. 멸치 어가도 20곳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단 6집만 남았다.

귀촌 희망 안고 향한 고향, 그러나 현실은…

한용선(28, 가명) 씨는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됐다. 6년 전 수도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용선 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귀향을 결심했다.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바다에서 태어나 자란 용선씨 에게 바다는 그리움이었고, 마냥 푸근한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시절 이따만한 고기를 학교 가서 선생님께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 후로 줄곧 아버지와 같은 어부가 되겠다고 꿈꿨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용선 씨는 방학 때 마다 바다 일을 도왔다. 멸치 건조장 일은 중학교 때부터 도왔던 터라 여느 장정 기술자 못지않았다.

아들이 학업을 접고, 일을 돕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강력히 반대했다.

현실은 막막했다. 아버지 혼자하기 벅찬 선원관리와 멸치 건조장 인력도 필요한데,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악화돼 갔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67세의 아버지는 요즘 피로를 쉽게 느끼신다. 고혈압에 고질병인 허리통증 때문에 오랫동안 서 있질 못한다. 얼마 전 큰 파도에 배가 휘청대는 바람에 갑판에 내동댕이쳐져 통증이 더 심해져 갔다.

멸치 건조장 관리는 보통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조업을 나가 건조장을 비우면 직원들이 멸치에 손을 댔다. 심지어 관리를 맡긴 직원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아들이 뭍에서 건조장 관리를 맡고부터선 한시름 놨다.

하지만 아버지가 잡는 어법과 어구가 불법으로 취급되면서 조업일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선원들은 떠나고 배 위에서는 한 사람의 노동력도 아쉬운 형국이다. 어쩔 수 없이 용선 씨도 배를 타게 됐다.

“현실 모르는 어구어법통폐합 제도…고기를 잡을 수 없다”

용선 씨와 아버지는 ‘연안선망’이라는 어법으로 멸치를 잡는다. 선망어업은 두건처럼 드리워진 그물을 사용해 어군을 널리 둘러서 잡는 어법인데, 근해 업종인 대형선망어업은 큰 배들로 이뤄진 선단을 구성해 고등어, 전갱이 등을 잡는데 반해, 소형업종인 연안선망 어업은 6~8톤 가량의 어선 두 대로 멸치나 밴댕이, 전어 등을 잡는다.
 
선망어업은 아니지만 멸치를 잡는 경쟁업종으로 기선권현망어업이 있다.

대형업종으로 분류되나 연근해를 오가며 멸치 등을 잡는 권현망어업은 우리나라 멸치 생산량의 60% 이상을 담당한다.

기선권현망 한 선단은 본선, 어탐선, 가공선 등 수십톤 이상의 배가 5~6척 정도로 구성된다. 기업화, 대형화된 업종으로 연안선망, 연안들망, 유자망, 낭장망, 죽방렴 등의 연안어업과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기후변화와 수온상승으로 밴댕이, 전어 등이 전남해역에서 사라져 한 씨 부자처럼 연안선망 선주들은 멸치만 잡고 있다.

멸치는 잡는 즉시 배에서 삶지 않으면 상하고 만다. 이렇게 자숙한 멸치는 뭍에서 2차 건조가공 과정을 거친다.

배에서 멸치를 잡고 자숙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다.

실제 제 작년에 다른 배의 한 선원이 솥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속이 떴다는 소릴 듣고 황급히 자리를 옮기려다 갑작스레 배가 움직이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남지역에서 사용하는 연안선망 어구는 현행 수산업법에서 ‘불법’ 어구로 취급된다.

이들의 그물에는 거센 물살에 따라 멸치를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게끔 ‘자루그물’이 부착돼 있다.

상대적으로 물살이 약한 경남 해역에선 자루그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 2010년 정부는 어구통폐합 정책에 따라 멸치, 밴댕이 등을 잡는 소규모 연안어업을 ‘연안선망어업’으로 통폐합했다.

이에 전국의 모든 연안선망 어구는 경남을 표준으로 하되, 이를 벗어난 어구는 불법으로 규정, 단속의 대상이 돼왔다.

조업을 나서기 전 한 씨 부자가 배의 엔진 등을 점검하고 있다.
조업을 나서기 전 한 씨 부자가 배의 엔진 등을 점검하고 있다. 조업을 나가더라도 어구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허탕을 치는 날이 다반사다.(촬영=김성환 사진가)

‘충남은 합법, 전남은 불법’…어민 두 번 울리는 고무줄 어업법

당시, 아버지는 법이 시행된지도 몰랐다. 그저 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불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구에 자루그물이 달려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말을 듣고 기가 찼다.

“같은 어구로 같은 어종을 잡더라도 지역마다 해역의 특성이 다를 터인데, 나라에서 정한 규정은 충남이든, 전남이든 경남 방식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해역은 물살이 빨라 경남 방식으로 두르면 멸치가 다 빠져나가고 없는데, 그렇게 고기를 잡으라니…”

전남에서 자루그물을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충남의 경우는 이를 합법화 해줬다.

충남 연안선망 어업인들이 충남도에 강력히 요청했고, 결국 제도개선으로 이어졌다.

상위법이 존재하긴 하나 조례개정으로 충분히 합법화 할 수 있는 지방위임사무였기 때문이다.

전남지역 연안선망 어업인들 역시 해수부를 찾았다. 해수부에서는 법에 의해 지자체인 전남도에 권한을 위임했으니 그리로 가보라 하고, 전남도는 지자체 고시는 상위법에 어긋난다며, 상위법을 먼저 고쳐야 합법적 고시를 해줄 수 있다고 서로 떠넘겼다.

그렇게 실랑이가 오가며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어업인들의 푸념은 일상이 됐다.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뺑뺑이 노름인가. 조상 대대로 고기만 잡아 온 우리가 무슨 죄인가. 전남에서 태어난 것이 죄인가”
 
한창 조업할 때 허가정수가 50~60건에 이르던 전남 연안선망 어업은 현재 15건 안팎으로만 살아남았다.

엄연히 따지면 이들도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정부의 불법어구 규정에 따라 적게는 전과 30범에서 60범까지 모두 범법자가 됐다.
그물이 배에 실려 있기만 해도 불법으로 간주된다.

수산업법 64조의 2, 수산자원관리법 24조의 조항에 따라 특정어구의 소지 및 어구의 규모에 대한 제한을 위반하는 것이다. 1000만원 이하의 벌금과 어업정지 행정처분이 뒤따른다.

문제는 만일 그물에 고기가 들어있으면 수산업법 41조 또는 66조 ‘무허가어업’의 적용을 받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중형이 내려진다.

특히, 적발횟수에 따른 어업허가 취소가 가장 무섭다. 양망 중에 그물에 고기가 든 채로 적발되면 현행법 위반 혐의를 모면할 수 없다.

현장에서 적발되기라도 하면 급히 깃 낫으로 그물을 터 고기를 내보낸다.  살기 위해 애써 잡은 고기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삶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이들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문종욱 해양수산전문 변호사는 “법적 지식이 부족하고 행정에 무지한 어업인들에게 행해지는 단속기관 담당자의 재량권 남용이 심각히 우려된다”며 “유사한 위반행위를 놓고도 단속기관 담당자가 어떠한 관점에서 법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처벌의 경중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속을 피해서…’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양벌규정은 있다. 적발되면 선장이나 어로장에게도 면허정지 처벌이 가해진다. 물론 책임은 모두 선주에게 돌아간다. 98조 몰수규정에 의해, 2회 이상 또는 3회 이상 적발되면 배를 몰수당한다.

부당함을 이유로 저항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그 자리에서 바로 연행되기 일쑤다.

조업은 단속을 피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일부러 악천후인 날을 택한다. 그래야 단속이 덜하기 때문.

다른 업종들은 작업을 그치고 어항으로 들어오는 굳은 날씨가 되면 그제서야 이들의 조업이 시작된다.

“바람이 엄청 부는 날 출어를 합니다. 그래야지 단속반이 나오기 힘드니까, 단속을 나오더라도 배를 붙이지 못하니까. 배를 집어삼킬 듯한 너울성 파도가 수없이 다가옵니다. 100톤급 어선들도 버티기 힘든 날씨지만 마음만은 편합니다.”

파도가 세차면 배의 복원력이 떨어진다. 배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다에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양망 시 가까워진 배끼리 부딪쳐 파손되기도 하고, 그물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미끄러운 선상에서 넘어져 다치는 일은 다반사. 몸은 상처투성이다. 목숨을 내놔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번 출어하면 천지를 찾아 헤맵니다, 거문도 해역까지는 왕복 10시간인데 빈 배로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닌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렵게 찾은 멸치어장에 권현망이 다가오면 양보해줘야 할 때도 많습니다. 불법어업으로 신고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기존 경험으로 찾았던 어장에는 멸치가 없다.

그 많던 밴댕이, 전어도 기후변화로 모두 전남해역에서 사라졌다. 북상한 어종을 따라 경계구역을 넘을 수도 없다. 조업구역 위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빨리 빚을 청산해서 아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

그러나 조업일수가 부족하다보니 벌이 자체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빚더미에 앉은 막막한 현실을 벗어나기 어렵다.

조업일수가 월 15일 이상 돼야 그나마 푼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지만 불법조업 취급을 받으면서 그렇게는 조업을 할 수 없다.
 
여기에 태풍이나 안개 낀 날까지 빼면 실제 조업일수는 한 달 수일에 불과하다. 빈익빈이다.
 
“지금 수산업법 제도는 우리 연안어업인을 점점 사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죽음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 저희의 삶입니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불법 어업인으로 낙인 찍히면 수협의 장기저리대출금이나 영어자금대출도 상환해야 한다. 면세유도 받지 못하고, 각종 국가시설지원사업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연안선망 어업인들에게 건조장지원사업이나, 어선현대화사업 등 국가지원제도는 견물생심. 자율관리어업공동체에도 가입할 수 없으니 어업인으로서 최소한의 권익도 누리지 못한다.

“감척요? 말이 좋아 감척이지 매매하면 허가값, 어선값 해서 6~7억은 받아야 하는데 많이 받으면 2억입니다. 현재 연안선망 어업은 불법이기 때문에 누가 살 사람도 없어요.”

판다고 해도 합리적인 가격을 받기도 힘들거니와 어업을 조건으로 빌린 돈이라 매매 후엔 은행에 모두 상환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덮친다.

한용선(28, 가명) 씨가 자루그물을 바다에 던지고 있다. 소형 선단인 연안선망은 이 처럼 전통적으로 자루그물을 바다에 넣어 고기를 잡아 올린다.
한용선(28, 가명) 씨가 자루그물을 바다에 던지고 있다. 소형 선단인 연안선망은 이 처럼 전통적으로 자루그물을 바다에 넣어 고기를 잡아 올린다.(촬영=김성환 사진가)

 ‘전과범’ 주홍글씨…하소연할 곳 없는 가혹한 현실

용선 씨는 삼남매 중 장남이다. 형제가 같이 일을 돕다가 둘째인 남동생은 몇 해 전 현실을 탓하며 도시로 떠났다.

어머니는 여름에는 건조장에서 일하며, 직원들 식사를 챙긴다. 조업이 저조해지면서 겨울에는 근처 굴까는 공장에 다니고, 틈틈이 밭농사도 짓는다. 조금이라도 대출이자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여동생은 수산직 공무원이 꿈이다.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겠다고 결심했다. 눈치껏 제 살길을 찾는 여동생이 못내 안타깝다. 용선 씨도 아버지도 여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빚이 차츰 늘어 10억에 가까워졌다. 아버지 앞으로 4억, 용선씨 앞으로 4억5000만원. 여기에 사채도 있다.

그나마 6년 전 용선 씨가 어업에 뛰어들면서 어업인 국가신용보증 대출을 받아 겨우 지금껏 버텨온 터다.

“올해 7월부터 시작되는 조업도 걱정입니다. 선급금이 6000~7000만원 정도는 마련해야 선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불법어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선원들의 갑질도 문제다. 일부는 노름이나 유흥비로 쓸 선수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선금을 주지 않으면 일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앙심을 품은 선원들이 단속반에 신고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게 중에는 선금을 받고 도망가 버려도 소재가 불분명한 이들이 태반이다. 사실상 찾을 방법이 없다.

기상이 좋지 않아 피항 후 배를 정박해야 하는 날이면 애가 탄다. 공치는 조업도 문제지만, 일부는 유흥비 명목으로 또 선금을 원하기 때문이다.

선주들은 그나마 외국인 근로자가 성실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는 현행법상 연안어업에 2명까지만 허락된다. 노동력을 구하기가 사실상 하늘의 별따기다.

오랜 싸움에 쓰러지는 그들, “이 나라에 희망은 있는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료는 단속기관에 저항하다가 공무집행방해로 수차례 입건됐다. 어업허가도 여러 번 취소됐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정부부처와 도청을 찾아다니며 격하게 호소하다 과로로 쓰진 이도 있다.

또 다른 동료는 경쟁업종인 권현망 어민들과 싸움을 벌이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졸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자살을 시도한 동료도 있다.

“나라에서 고기 나올 강 하구 구멍들 간척으로 다 막아 놓고, 양식으로 바다 황폐화 해놓고, 자원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 어찌 어업인들 탓인가요. 더  이상 이 나라는 우리들에게 희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오영훈 의원(제주시 을)은 “어민과 어업을 위해 개정한 법안이 오히려 어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 의원은 “전남연안선망 어업인들은 생계를 위해 계속해서 자루그물을 사용해 멸치어획을 할 수 밖에 없는데 해수부가 어업인들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시행령 개정으로 갈등만 초래한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전남지역 연안선망 어업인들의 이같은 현실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졌지만 행정당국은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그나마 묵묵부답하던 해수부가 최근 TAC(총 허용어획량제도) 카드를 빼들었지만,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어민 살린다던 ‘TAC 제도’…그림의 떡

최근 정부는 기존 어업규제제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TAC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지난 3년간의 어획량을 기준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보니 전남연연선망 어업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충남연안선망의 경우 30여개 허가 건수에서 최근 3년간 평균 생산량은 7000~8000여톤에 이른다. 1개 허가 건수 당 250~300톤 가량은 잡는 셈이다.

그러나 전남 연안선망은 전체 15개에서 생산량은 500여톤, 허가 건수 당 30여톤에 불과하다. 충남은 연중 단 4개월만 조업할 뿐인데도 전남의 10배 가까운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유사한 해역에서 멸치를 잡는 대형업종인 전남 기선권현망은 16개 선단에서 2만5000톤의 물량을 생산한다.
 
시범사업이라도 적용대상이 된다면 합법적인 조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어업인들의 기대는 컸다. 그러나 어업할당량 산출 기준이 직전 3년 평균 생산량 선에서 책정되면서 어업인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 3년간 불법조업이란 오명을 쓰면서 눈치껏 조업해 왔던 전남지역 연안선망 생산량이 극히 저조해 법령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 농해수위 서삼석 의원(무안·영암·신안)은 올해 초 열린 임시국회에서 “지금까지 정부정책이 힘 있는 어업인들에게 편향돼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라도 TAC 제도가 힘없는 어업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제도인지, 수산업법이 수산자원보호를 내세워 어업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제도적 모순을 가지지는 않았는지를 살피길 바란다”고 해수부에 주문했다.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각박한 삶이지만 한 씨 부자는 함께 살아가려 한다.

단속을 피해 잡은 멸치를 10여년전부터 장애인 복지시설에 기부해오고 있다. 일 년 한 차례 300박스 정도를 보내는 정도지만 그들에게는 큰 선물이다.

아버지가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더불어 살아야제. 바다는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것이고, 우리는 덕분에 먹고 사는 건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알제. 다른 거 뭐 있단가. 떼 돈을 벌자는게 아니지 않는가. 힘들더라도 나누면서 살자는 것이 우리 어민들의 소박한 바램이라. 그것이 사람 사는 이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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