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방송] 비록 장원급제이긴 하지만 신출 관리 이도령이 바로 암행어사로 나가는 것도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대개 과거에 급제하면 종9품이라는 최하위직에서 출발하는데 장원급제인 경우는 품계를 더해서 종6품직을 제수했다.

따라서 장원급제자는 동기생 보다 보통 4~5년 정도 승진 시기가 빠르다. 암행어사로 파견될 수 있는 최소한의 직급이 종 6품직으로 이것도 가능한 설정이긴 하지만, 암행은 말 그대로 비밀리에 왕이 지시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왕의 시종신(侍從臣)을 파견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신참을 바로 암행어사로 파견할 만큼 조선왕조가 엉망이지는 않았다.

이도령이 남원에 파견된 사례에서는 소설적 허구의 극치를 이룬다. 조선시대에는 상피제가 엄격히 적용되어 자신의 출신지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연고지역에 나가 안면이 있는 벼슬아치들의 청탁을 받는다면 공정한 암행의 업무를 어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상피제의 적용은 부정과 청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조선시대 내내 지켜졌다.

특히 암행어사의 파견지를 결정할 때는 추생(抽 )이란 엄격한 추첨 제도를 적용했다. '추(抽)'는 뽑는다는 뜻이며, ‘생()’은 나무의 껍질로 만든 ‘제빗대’란 뜻으로 직접 제비를 뽑아 왕명을 받아 감찰할 지역을 정하게 했다. 요즘도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제비뽑기'란 '잡다'의 명사형인 ‘잽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한자로 쓰면 추첨(抽籤)이 된다.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조선후기 전국의 군현은 대략 400 여개에 달했다. 물론 상피제의 적용으로 이도령은 남원으로 갈 수 없었지만 추첨을 한다 할지라도 확률은 1/400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설이니까 이도령은 춘향이가 고통을 받는 남원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9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함께, 2007
『제왕의 리더십』, 휴머니스트, 2007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중앙M&B, 2003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개, 2005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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