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민 구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노라니, 어느 덧 새벽 4시다. 이러다가는 밤을 꼬박 새울 판이라, 신하 한 사람이 잠자리에 들기를 청했더니, 정조의 말인즉 이렇다.

 “아침에 전라 감사의 보고서를 보았는데, 제주에 기근이 들었다고 알려와 나리포창(羅里浦倉)의 곡식을 배로 실어 보내는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굶주린 섬 백성들이 먹여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도 불쌍해 잠시도 잊을 수가 없다.”

굶주리는 백성을 생각하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아마도 제대로 된 왕의 자세일 것이다. 여기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곡식을 꾸리고 배에 실어 나르는 바닷가 백성들은 또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시퍼런 바닷물에 배를 타고 노를 젓는 그 수고로움이 눈에 삼삼하여 절로 눈을 붙일 수가 없구나.” 제주도의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을 가져다주려면 전라도 해안가 백성들이 또 시퍼런 파도를 노를 저어 건너야 한다. 그 백성들의 고생이 눈에 삼삼하여 왕은 절로 눈을 붙일 수가 없다.

측은지심이 가득한 왕은, 곡식을 실어 보낼 때마다 처마 끝에 혹 바람 소리라도 스치면, 한밤중에도 불을 켜라 하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린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이유를 그는 다시 밝힌다.

“백성이 굶주리면 나도 굶주리고, 백성이 배가 부르면 나도 배가 부르다. 저 섬의 수만 명 백성들이 천 리 먼 곳에서 자신들을 먹여주기를 바라고 있고, 또 몇 백 명 뱃사람이 멀리 깊은 바다를 건너간다.

이런 때 한 줄기 바람, 한 방울 비라도 고르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편히 잠들고 싶어도 어떻게 잠이 들 수 있겠는가? 도신과 수령들이 나의 이런 마음을 헤아린다면, 섬 백성들도 따라서 살아날 것이다.” 정조의 이 말이 입에 발린 말은 아니다.

홍재전서』와 『정조실록』을 읽어보면, 그는 유가(儒家)의 이상에 부합하는 선정을 베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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