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방송] 정조는 왕이다. 그의 행동과 사유에는 마키아벨리즘도 언뜻언뜻 비친다. 게다가 그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흔히 정조의 개혁을 말하지만, 그 개혁은 어디까지나 보수적인 성격의 것이다.

하지만 정조는 경전과 역사, 문학에 정통한 당대 최고의 독서인이자 교양인이었다. 곧 교양 있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였던 것이다. 그가 백성에 대해 가졌던 한없이 깊은 측은지심도 바로 유교의 교양에서 출발한 것일 터이다.

지금은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 세상이다. 이 점에서 세상은 확실히 진보했다. 하지만 국민이 선출한 정치지도자가 정조와 같은 독서인이자 교양인인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정치의 바탕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 곧 측은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입만 벙긋 하면 역사와 국가를 들먹이고 백년대계 운운하지만, 글쎄 그것이 국민을 진정 배려한 것인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연일 신문에 등장하는 거창한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홍재전서』의 「일득록」을 읽고서 이렇게 적어 본다. 정치에 뜻을 두신 분들은 어디 「일득록」부터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이 어떨지?(이 글에서 한 이야기는 모두 『홍재전서』「일득록」에 나오는 것이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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