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방식 숫돌 사용한 칼 연마로 사업화 성공
"고객과 신뢰는 생명, 칼에 대한 학문 체계 완성"

▲칼의 달인으로 불리는 최지선 '칼의 노래' 대표가 칼 연마 작업을 하고 있다.

[여수/남도방송] 일회용품이 넘쳐나는 일상. '쓰고 버리기'가 생활이 되어버린 물질 만능시대, 전통 방식의 칼 연마를 고집하는 장인이 있어 화제다. 칼의 달인으로 불리며 전남지역을 누비는 최지선(53) '칼의 노래' 대표가 주인공이다.

"쓱쓱"

뭉툭한 숫돌 위에 올려진 칼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정한 속도와 반동이 더해지며 장인의 손은 가속도가 붙는다. 장인의 몸과 칼이 혼연일체가 된지 10여 분. 무디었던 칼은 날카롭고 서슬 퍼런 명검으로 광채를 내뿜는다.

과거 소위 칼갈이로 불리는 칼 연마 장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칼 갈아" 하는 소리가 들릴 때면 동네 아낙들은 쟁여두었던 칼을 모조리 꺼내 왔다. 요즘은 어지간해서 보기 힘든 옛 풍경이다. 

최 대표는 칼갈이가 되기 전 횟집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난생처음 식당을 해보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했다. "부엌칼도 갈 줄 모르는데 식당을 하겠다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객기였죠. 식당 문 닫는 것 시간문제 아니었겠습니까? 하하."

사업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었던데다 마음만 앞섰다. 식당을 접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리저리 허드렛일도 닥치는 대로 했지만 현실은 버거웠다. 사업이 망한 이유를 뒤늦게 곱씹어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마 위에 있던 칼에 어느 순간 시선이 꽂혔다. 자신처럼 칼을 갈지 못하는 식당 사장들을 위해 칼을 갈아주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때부터 인터넷과 SNS를 뒤져 칼을 어떻게 연마하는지 독학했고, 지금은 칼 연마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

최 대표는 작은 화물트럭으로 이동식 칼갈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남동부권과 서부권을 마다하지 않고,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뛰어다닌다. 돈보다 고객과 약속, 신뢰를 지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연마 작업이 끝난 칼. 칼날이 예리하게 다듬어져 있다.

보통 칼 한 자루 가는데 적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걸린다. 칼날을 다듬는 데서 나아가 칼 선과 칼 면을 예리하게 세우는 작업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수공 방식의 칼갈이가 기계에 비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주문을 많이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칼 한 자루에 들어간 그의 정성과 집념을 알아본 고객들은 감동 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본디 칼이라는 것은 쓰다 보면 변형이 되고, 이가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기계로 연마하면 발생하는 마찰열로 인해 칼날이 더욱 약해집니다. 하지만 손 숫돌로 갈면 산화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칼을 연마하는 작업이 단순한 사양 직종이 아니라 전통으로써 보존해야 할 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몸을 쓰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는 작업이기에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야 한다. 칼을 갈기 위해선 적당한 리듬과 손끝의 감각, 집중력이 필요하다.

최 대표는 좌우 맷돌 방식으로 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숫돌 200목(숫돌 입자)을 사용해 칼 선을 잡고 난 다음 날을 세우고, 가죽으로 마무리한다. 직접 눈으로 칼날과 칼 선의 선예도를 체크하며 무딘 부분은 재차 연마한다. 

칼 중에서도 공장이나 대장간에서 만든 싸구려 칼은 연마가 쉽지만 대신 오래 쓰지 못한다. 여러 번 담금질을 거친 탄소강이나 하이스강으로 만들어진 칼은 연마에도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된다. 

손, 어깨뿐만 아니라 허리와 하체까지 쓰는 고된 노동이다. 때문에 아침마다 스트레칭, 팔굽혀펴기, 허리돌리기 등 운동을 통한 체력관리는 필수. 또한 고객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외모를 청결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 대표에 있어 칼은 인생을 가르쳐 준 멘토이자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기도 하다. 최 대표는 "인간에게 칼은 각종 음식을 하거나 사냥을 하고, 전쟁에도 사용된 원초적 도구라는 점에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꾸준한 자기 계발과 후진 양성을 통해 칼 연마를 학문 또는 기술로 승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작은 화물트럭으로 이동식 칼갈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칼의 노래 최지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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