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군 석곡면 돼지 한마리의 ‘청둥오리 로스’

[기획/남도방송]모처럼 쾌청한 날에 나들이를 청하고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따라 가을을 재촉하는 마음을 다스려본다. 산도 보고 들도 보면서 뭉그적거리는 코스모스를 토닥거리며 빨리 깨어나라고 졸라도 본다. 몇 백년 이상은 족히 넘어보이는 고목들을 지나 흑돼지석쇠구이로 유명한 석곡에 이르니 벌써 고소하고 달콤한 향들이 벌름 벌름 코를 자극한다.

도전을 해 볼까?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특정지역의 어느 음식점을 가서 약간의 음식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내재한다면 그나마 실망을 하지 않는 방법 중의 한 가지가 그 지역의 유명음식을 택하거나 아니면 그 음식점만의 주메뉴를 선택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하다. 흑돼지의 고장 석곡에서 그도 돼지한마리라는 돼지고기 전문점에서, 필자는 오늘 모험 중의 모험을 선택한다.
“ 청둥오리로 한 마리 주세요!”

깔끔하게 손질이 되어 제공되는 청둥오리의 살이 신선해 보인다.

불판이 어느 정도 달구어지자 오리고기와 함께 버섯, 양파, 마늘 등을 듬뿍 쌓아 올린다. 지이익 소리와 함께 오리의 구수한 냄새가 카메라렌즈를 휘감아 잠시 셔터 누르는 일을 잊었다.

채 고기가 다 익기도전에 자그마한 조각을 집어 낼름 입안에 넣고 혀를 달랜다. 사악 퍼지는 구수함에 상추에 마늘이며 쌈장, 고추를 미리 얹고 마음으로 다 익은 고기 몇 점을 들깨초장을 듬뿍 발라 상추에 둘둘 말아 입이 미진다 싶을 정도의 쌈을 해본다. 느끼하지 않은 담백한 기름의 고소함에 야채를 곁들이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청둥오리 날다.

요즘에 농업용이나 식용을 위해 사육하는 경우들이 많아 식탁에서 접할 기회가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쉽게 접해지는 음식은 또한 아니다. 그러한 청둥오리를 생뚱맞게 돼지고기 전문점에서 이렇게 훌륭한 퀄리티로 만날 수 있다는데서 만족을 느꼈다.

푹 삶아서 물기를 약간 빼서 꼬들해진 묵은지 김치찜에다가도 싸서 먹어보고, 맹한 톡쏘임을 아직 지닌 파김치에 싸서 먹다보니 청둥오리가 입안에서 퍼득퍼득 날려고 날개짓을 하는 듯 하다.

▲ 묵은지를 졸여만든 김치찜의 색이 아주 맑다.

추운겨울에 바다의 향과 바람과 사랑을 듬뿍 담아 무더운 여름을 꽁꽁 언채로 보낸 겨울해초인 감태무침은 청둥오리와 만나니 가히 절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색을 확연히 자랑하고 향을 쏟아낸다.

석곡을 돌실나이의 고장이라 칭하는데 예부터 모시의 재배 및 가공기술은 전국에서 으뜸이고 오래전에 그 기술이 인정되어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장인의 정신이 깃든 고장이어서인지 음식하나 반찬하나가 결코 범상치 않은 내공을 자랑한다.
드디어 오리요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탕이 내어져 왔다.

▲ 뼈와 내장에 나물과 양념이 배합되어 끓여진 청둥오리 탕.

청둥오리의 살을 발라내고 뼈와 내장 등 구이가 어려운 부분을 모아 들깨가루가 듬뿍 들어간 얼큰하고 시원한 육수에 갓 나온 토란대 나물은 가히 극치였다. 수저에 얹힌 자그마한 양의 국물이 온 몸을 전율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청둥오리가 드디어 높이 날은다. 타고난 천성을 억제하며 살아온 그가 드디어 힘찬 날개 짓을 하며 저 높이 하늘을 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앞 접시에 국물을 조금 떠 놓고 밥을 약간 덜어 자작하게 말아서 먹다보니 웬걸 밥 한 그릇이 어느새 동이 난다.

구이가 정열적이고 펄떡이는 젊은이의 상징이라면 은은하고 깊이 베인 국물의 향과 진한 맛은 노숙한 어른들의 새삼스런 여유라고나 할까?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밀고 들어오는 청둥오리 탕의 맛에 자꾸 수저질을 한다.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서도 조금은 아주 조금 뭔가 서운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얼까? 창밖으로 보이는 강줄기에 도도히 흐르는 물이 여유롭다. 배부르고 만족하면 저 흐르는 강물마냥 제 갈길 가면 될 것을 왜이리 미련이 서는걸까?
‘그래, 배가 터지더라도 흑돼지 맛 좀 보고가자!’

▲ 두툼하게 제공되는 흑돼지 삼겹살

언제 내가 배 부르다 했던가? 자꾸 손이 가고 불판에 삼겹살이 올려지는 것을 보니 자신이 심하다 싶다. 자르르 흐르는 윤기에 노릇하게 구워지는 색감에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은 또 다른 음식의 풍미를 제공한다.

엄밀히 말하면 쫄깃함의 배가를 위해 껍질이 약간 남은 오겹의 맛이지만 석곡에서 왜 돼지고기 요리가 유명해 졌는지를 극명히 표명하는 맛이었다.

무얼 저리 많이 먹나 하는 눈 빛으로 쳐다보다가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며 빈 그릇들을 다시 채워주시는 박 공례 사장의 웃음 가득 머금은 얼굴이 소화를 많이 돕는다.

▲ 곡성군 석곡에 위치한 음식점 전경

<음식점 정보: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 119, 061)362-3077, 목살석쇠구이, 청둥오리로스, 오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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