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중앙시장 성일식당의 “돌곱창”

11월이 저물고 어느새 12월을 맞이한다.

혹자는 12월을 1년 중의 마지막 달이라기보다는 다음 해를 기약하는 준비하는 준비의 달로 생활하는 이가 있다.

모든 운동이나 생활에서 준비하는 워밍업(warming up)이 중요하듯이 12월을 정리하는 달보다는 내년의 약진을 위한 계기로 삼으려는 부지런한 이들의 이야기다.

필자의 나태함이라 어머니로부터 항상 꾸지람 듣는 자신만의 여유로움은 준비를 서두르기보단 이 시간을 음미하며 즐기고 싶다.

나무에 달려 붉고 노란 형형색색의 모양을 지닌 모습에 칭송받고 감탄 받던 날들이 불과 엊그제인데, 이제는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버림받은 낙엽의 신세처럼 어느 순간 화려한 추억을 먹어 본다.

세월이 있는 그릇 “돌 냄비”  

성일식당 주메뉴 돌곱창의 상차림


창업자 팔순이 넘은 노모로부터 2대째 운영을 하는 따님에게 이르기까지 무려 50여년을 넘게 불 위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그릇들이다.

때로는 모질게 채찍질하며 음식과 장사를 가르치는 엄마가 미워서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쑤세미로 뻑뻑 들이미는 딸의 넋두리를 받아 주었다.

때로는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주체 없이 흘리며 횡설수설 하던 녀석의 넋두리를 같이 울면서 달래주었다.

떡대 같은 덩치를 가진 장정 다섯 놈이 들어와 2인분 시켜놓고 애꿎은 육수에 야채와 당면만 추가해 가면서 바닥을 빡빡 긁어대던 녀석들의 허기를 모르는 척 곱창 몇 점을 넣어주어 웃음과 희열을 선사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그 녀석은 오늘도 또 그렇게 자신을 끓이고 있었다.

돌 곱창이 구이가 아니고 전골이네?

경상도 쪽에서 곱창 전문 음식업을 창업하고자 하는 분을 모시고 벤치마킹을 위해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순천에서 전통이 있는 돌 곱창을 시식해 보겠느냐는 제안에 선뜻 응해 와서 마련한 자리였다.

구이와 국밥에 익숙한 그들에게 돌로 제작된 그릇에 전골을 제공하는 콘셉은 충격이었다.

얼큰하고 시원하면서도 맵지 않고 달콤하게 우러난 육수의 맛은 그들을 탐복시켰고, 보드랍게 아작아작 씹히는 곱창의 맛은 술잔을 한 없이 기울이게 만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한 번 더 제공되는 무서운 양의 야채와 당면, 그리고 육수에 숨 쉴 겨를 없이 그냥 바빴다.

▲리필되는 야채와 당면으로 돌냄비가 다시 그득 채워진다.

 와~, 내 배 짜구 나겠다.

잔뜩 베인 열을 오롯이 내받아 끓어오르면서 밑동 빠알간 시금치에서 내뿜는 단 향이 온 방을 채운다.

시금치 한 잎에 당면을 살짝이 감싸 안고 야들한 내장을 한 점 올리니 흐흐흐 웃음이 절로 난다.

밥 한 공기 시켜놓고 자박한 국물을 밥에 비벼 양껏 입에 채우니 달기도 하고, 맵기도 하고, 얼큰하기도 하고 ‘아, 어쩌란 말이냐’.

돌 판에 비빔이 일미임을 익히 아는지라 수저질을 잠시 멈추려 술잔을 기울여 본다.

첫 잔의 목 넘김이 어설픔을 은은한 국물이 달래니 다음 잔이 무척이나 수월하여 잔 채움이 빨라진다.

입영전야에 친구들이 건네던 술 잔이 생각나고, 휴가 나온 녀석과 추억을 새기려 찾아와 낄낄대며 좋아했던 시간이 되돌아 온다.

댕기는 입 맛에 배가 차오르고 솟아오르는 추억에 머리가 차오르니 위아래로 빵빵해져 정말로 내 배가 짜구 나겠다.

돌 솥에 토독 토독 눌려져 가며 내는 비빔밥소리며, 자꾸 유혹하는 코 밑의 참기름냄새가 배부름에 대한 아무런 생각을 못하게 두터운 장막을 내린다.  

▲완성된 돌곱창요리

 지켜온 50년, 지켜나갈 50년.

어느 날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생업이 되었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50년이 되었다.

예전의 2층에 가득, 별채에 가득, 이쪽 저쪽으로 달려 다니던 시절이 그립기는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지금에도 오늘의 자신들을 있게 해 준 돌곱창에 대한 애정은 두 모녀의 밝은 얼굴과 촉촉한 눈길에서 이미 말한다.

엄마의 업을 딸이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렀고 아직은 대를 이을 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의 애정어림과 정이야 누가 알리야.

세월이 흘러 먹거리가 충만해지고 시장상황이 많이 바뀌어 찾는 이가 뜸하지만 한 번 찾고 맛 본 손님들은 반드시 재방문을 한다며, 조만간 또 북적거림을 기대하고 앞으로 50년 동안은 끄떡 없을거라는 자신감이 돋보인다.

한동안 잊었던 음식을 찾아 옛 맛과 함께 추억을 즐기고, 2010년을 갈무리하고 힘찬 다음 해를 위해 청년시절 걸었던 거리를 오늘은 한 번 걸어봄이 어떨까? 

▲한 때 인산인해이던 골목이 무척이나 한가롭다.

음식점 정보: 전남 순천시 남내동 75 , 061)752-7376, 곱창요리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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