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진(逼眞)’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실물과 아주 비슷함’이라고 풀이하였듯이, 참에 아주 딱 가깝다는 뜻으로 시나 글이 실정에 완전할 정도로 부합되는 표현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옛날부터 뛰어난 시인이나 문장가들의 글은 대체로 핍진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표현이 사실적이고 묘사력이 훌륭한 다산의 시나 글은 정말로 핍진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산은 벼슬하던 젊은 시절에 딱 한차례 황해도 곡산고을의 도호부사라는 벼슬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곡산향교의 유림들에게 효도하기를 권해준「유곡산향교권효문(諭谷山鄕校勸孝文)」이라는 글을 읽어보면 이렇게 핍진한 글도 있단 말인가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남자들이란 처부모에게 겉으로는 소박(疎薄:정이 얕고 소원함)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은근한 정을 품고 있다.(男子之於妻父母。外似疎薄。而內有隱情)”라고 말하고는, “부인들은 시부모에게 겉으로는 존경해마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비난할 거리만 품고 있다.(婦人之於舅姑。外似尊敬。而內有潛訕)”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둔 뜻을 다산은 어쩌면 이렇게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이런 멋진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면서 다산은 남자들이 자신의 친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방해요인으로 아내와 재산을 거론하였습니다. “불효의 원인은 아내와 재산이다. 부모가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으면 원망하고, 부모가 아내를 수고롭게 하면 불평한다.

부모가 재산에 손해를 끼치면 화내며 부모가 재산을 쓰는 것을 보면 걱정하여  재물을 상자 속에다 깊이 간직하며 그 부모를 도외시하는 것이 불효다.”라고 말합니다. 부모를 제대로 섬기기 위해 아내가 집에 함께 있어야 하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 재산은 꼭 필요한 것인데, 오히려 아내와 재산 때문에 제대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다는 기막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세상은 다산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각박하고 기가 차는 세상입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던 아들보다는 딸이 더 행복한 가정의 요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위들은 친가의 부모는 잊으면서 아내의 부모인 처부모에게 온갖 효성을 바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산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속으로만이 아니라 겉으로까지 노골적으로 처부모만 부모로 여기는 한심한 세상이 오늘입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여성상위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부계에서 모계로의 뚜렷한 변화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며느리는 남편과 함께 친정쪽으로만 향하고, 딸은 남편과 함께 시가쪽이 아닌 친정쪽으로 향하면서, 아들 가진 부모들의 비애는 점점 커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시부모를 친정부모처럼 모시고, 부모를 모시기 위해 재산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는 날은 없을까요. 딸 없는 불쌍한 부모들을 위해서라도 다산의 「권효문」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모시는 것처럼만 하면 된다”는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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