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해경, 신원확인 끝에 변사자 '유족 품으로'

[여수/남도방송] 바닷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노인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영영 무연고 변사자로 남을 처지였으나, 여수해경 한 수사관의 끈질긴 신원 확인 끝에 유족의 품에 안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잔잔한 감동이 돌고 있다.

여수해경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 오전 10시 20분께 여수시 삼산면 초도 해안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숨진채 방파제 구조물(테트라포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 해경에 신고했다.

백발에 틀니를 한 노인이라는 점 외에는 사체 전반에 걸쳐 부패가 심해 신원을 확인할 만한 특별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경은 시신을 수습해 병원에 안치했고 사건을 맡은 수사과 김계빈(32) 형사가 지문 조회 등을 통해 신원 확인에 착수했다.

이와 동시에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했지만 범죄에 기인할 만한 특별한 외상 등은 발견되지 않았고, 부검의는 익사(溺死) 소견을 냈다.

김 형사는 시신에 남아 있는 3~4개의 지문을 간신히 채취해 이를 해양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박혜진(35) 실무관에게 보내 지문 감식을 의뢰했지만 신원 확인은 쉽지 않았다.

부패로 인해 지문의 상태가 좋지 않아 수 만건을 대조해도 동일한 지문번호를 구별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김계빈 형사.
김 형사와 박 실무관은 또 비슷한 연령대와 틀니 등 신체 특징을 비교 분석하는 ‘실종노인등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이용, 신원확인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병원에 안치된 시신을 무한정 보관할 수는 없었다. 관련 법과 절차에 따라 관할 자치단체에 무연고 변사자 처리를 의뢰해야 할 상황이었다.

김 형사는 추후 유족을 찾을 것에 대비해 가매장을 요청했으나 시신은 결국 지난 5월 25일 화장되어 여수시립공원묘지 납골당에 안치됐다.

사실 범죄로 기인할 만한 소견도 없고 신원 확인도 되지 않아 규정에 따라 사건을 종결지어도 무방했지만 김 형사는 신원 확인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연고자가 있을것이다” 김 형사는 박 실무관에게도 중단하지 말고 신원 확인을 계속해 주도록 끈질기게 매달렸다.

박 실무관이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비슷한 연령과 신체특징을 입력해 수 천명을 추렸고 이를 다시 160여 명으로 압축한 뒤 김 형사는 일일이 확인을 거쳐 숨진 노인과의 관련성을 확인해 나갔다.

결국 화장한지 한달 뒤인 지난달 19일 국과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 4월 6일 전남 완도에서 실종된 최 모(36)씨의 아버지와 대조하던 중 오른손 가운데손가락 지문 하나가 일치해 유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김 형사는 보관해 둔 노인의 감정물을 토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최 씨와의 유전자(DNA) 감정을 의뢰했고, 국과수는 숨진 노인과 최 씨 사이에 친생자 관계가 확실하다는 감정 결과를 보내왔다.

해경의 연락을 받은 최 씨 등 유족들은 지난달 말 여수시립공원묘지를 찾아 납골당에 안치된 아버지(72. 완도)의 유해를 인도 받고, 그 자리에서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버지를 찾아준 경찰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건을 담당한 김 형사는 “자칫 무연고 변사자로 남을뻔한 아버지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토록 찾던 유족의 아픔을 다소나마 해소해 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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