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배나무 골 원두막 의 “촌닭 백숙”

[기획/남도방송]농사 일 하시는 분들은 쏟아지는 장마비에 물도랑 치기를 하다가 내리쬐는 뙤약볕에 병충해 생길까 타지 않을까 하루에 몇 번씩 논 주위를 둘러보고, 변덕스런 기운에 착과 마저도 시원찮았던 과수 농가들은 어찌할 바 모르게 바쁘다.

방학이라 어디로 놀러 갈까 쫄망거리며 쳐다보는 아이들 녀석들의 까만 눈망울 때문에 형편을 무릅 쓰고 이리 짜고 저리 짜는 휴가계획서는 빨간 줄이 벌써 여럿이다.

머리도 몸도 온통 말 그대로 총체적으로 복잡하고 몸과 마음이 바쁘고 두서를 정리하기가 만만찮다. 뭔가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 선조들은 가끔 손을 내려 놓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다.

바쁘고 정신 없는 가운데 가지는 한가로움, 바로 한 템포만 쉬어 가자는 조상들의 일처리 방식이고 지혜라 할 수 있겠다.

조정래,  태백산맥,  진트재...
많은 스토리가 있는 진트재를 넘어서 우측으로 벌교읍으로 향하는 옛 길로 접어 들어 우측의 제석산 자락을 오르는 곳에 원두막이라는 식당이 있다. 지나 다니며 몇 번이고 한 번은 들르고 싶다하는 충동이 생길 정도로 언덕위에 예쁘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 원두막 식당에서 바라 본 벌교읍 앞 중도 들판 전경

사랑도 곁에 있어야 사랑이라 했던가? 일 손을 놓고 탁 트인 너른 중도 들판을 바라보니 정 하섭이니, 소화이니 하는 이들만이 떠오를 뿐 어느새 내가 이 자리 있기 전 하던 일들은 까마득히 멀리 남의 일이 되고 말았고나.

산바람인가? 들바람인가?
아담한 필자의 체구마저도 고개를 숙여야만 안으로 들어 설 수 있는 야트막한 처마에 황토로 곱게 발라진 흙 벽은 그 고운 붉은 색만큼이나 이쁘고 향기롭다.

▲ 황토 흙으로 벽을 쌓아 올린 몇 몇 독립 별채들이 원두막이라 지어져 있다.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열린 창과 문으로 들어 서는 바람이 기다란 바지 가랑이를 거슬러 등골의 땀을 머리 끝으로 쭈욱 밀어 올려 공기 중에 날린다. 먹고 싶다는 생각 보다는 시원한 종이 장판에 드러 누워 목침베고 한 숨 멋지게 코를 골아 보고 싶다. 와우! 환희다.

20가지 이상의 다양한 상차림.
가득찬 쟁반 두 개를 상에 얹어 놓고 보니 벌써 한 상 가득이다. 여러 종류의 튀김에 만두, 옥수수 등 어린이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부터 어른들의 술 안주까지 고루고루 챙긴 것이 어린이부터 나이 드신 분까지 가족단위의 외식을 위한 상차림이다.

▲ 원두막의 기본 상차림

큼지막한 촌 닭에 항아리 묵은지의 조화.
막 잡은 닭의 닭가슴 살, 똥 집(모래집, 근위), 닭 껍질에 지금 막 뽑아 올린 시원한 생맥주를 한 잔 들이키니 이제는 온 몸이 오돌돌 하다.

대도시 일부에서는 일반음식점에서 생맥주를 판매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지방에서 생맥주를 일반음식점에서 판매한다는 것은 상당히 모험이라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키고 보니 송 현숙(53)사장의 아담하지만 당찬 모습을 닮은 키가 크고 훤칠하게 건장한 아드님 최 승호(28)씨의 사업적 역량을 엿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새파란 두건을 둘러 쓴 커다란 촌 닭의 수줍은 자태와 1년 이상을 흙 속의 항아리에서 농익어 빛나는 자태를 자랑하는 묵은지와 무 속박이는 감히 넘보지 못 할 포스가 다가온다.

묵은지를 손으로 주욱 쭈욱 길게 찢고 데쳐진 솔에 마늘, 쌈장, 풋고추를 얹어 당기니 코 끝에 먼저 비치는 묵은지의 군등내가 냉장이 아닌 항아리의 자연 숙성임을 일러 바친다.

혀에 감기는 신 맛이 닭 살을 사정없이 당기고 목 젖을 살랑 휘 저으니 소주를 부르는 소리다. 익히 묵은지와 닭의 조화야 아는 바이지만 배나무골 원두막의 항아리 묵은지는 또 다른 조화의 아름다움을 알려 준다.

▲ 주메뉴인 촌닭 백숙

자연과 문학과 여유를 가지는 시간
누구나 한 번쯤 한 구절 정도는 읽었을 법한 이 지역의 문인 조 정래 선생의 문학과 광활한 자연의 중도 들 판, 여기 저기 봉지한 배나무 밭에서 한 낮에 가지는 이 풍류야말로 진정한 망중한이 아닐까?

가끔은 무거운 짐을 한 번은 내려 놓고 땀을 식히며 힘을 채워 보자. 열심히 성실히만 산다고 어찌 세상이 마음대로 되던가? 호사스럽다 부끄러워말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이 땅의 평범한 소 시민들이여!
오늘은 사치 한 번 누려 보는 것은 어떨까?

▲ 청,홍,백 삼색의 조화스러운 쌈

<음식점 정보: 보성군 벌교읍 장양리 335-1, 061-857-9111, 촌백숙, 구이, 옻닭, 묵은지 닭도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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