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아랫장 “동태머리전”에 막걸리 한 잔

명태 - 양 명문 詩, 변 훈 曲, 오 현명 노래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기획/남도방송]오현명은 회고록에서 "변훈의 '명태'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그 노래에 깃들어 있는 한국적인 익살과 한숨 섞인 자조와 재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며 "명태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냄새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그런 곡이다.

그 곡에서는 젊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는 영혼들의 자조 섞인 신세를 명태에 비유한 한탄조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날 아닌 아랫장

▲ 장이 서지 않을때는 한적한 순천 아랫장의 모습

 

서울을 비롯한 중앙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방에서 살아가는 많은 서민들이 가지는 상실감, 허무함, 자괴감 등이 근래에는 부쩍 늘어나는 듯하다.

가장 큰 경제적인 요소에서부터 정치, 사회, 문화 등 너무나 빠르고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상황들이라 먹고 살기도 바쁜데 미처 어느 것 하나 챙기지 못하다 보면 낙오 되는 듯한 불안함은 더더욱 자신을 옥죄어 온다. 장날이면 발 디딜 틈조차 없던 이곳이 목적이 없는 날은 이렇게 한산하다.

한 뼘이라도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자신의 물건을 팔려고 아웅 다웅 다투던 공간을 장이 파하니 어느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는 모양새가 마치 조금 전까지 알랑거리며 눈웃음치던 술집 도우미 언니가 시간 났다고 휑하니 떠난 너저분한 자리에 몽한 눈을 한 채 버려진 듯한 내 작태다.

서민들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 기름에 지글지글 익혀지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동태 머리전

두툼하게 발라진 부침옷 사이로 쭈삣 쭈삣 내미는 까무잡잡하고 넙데데한 얼굴 뼈 들이 내가 그래도 어두일미의 제1주인장 '명태머리요'라고 외친다.

물론 어두일미의 진짜 주인공은 도미라고 알려져 있지만 알맞게 달궈진 널직한 후라이팬에 옥수수 식용유를 두르고 부침 옷을 잔뜩 껴입은 채 턱하니 자리를 잡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에 침을 꼴딱꼴딱 들이킨다.

침만 삼키는게 무안해서 얼른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해 본다. 구수하게 번져오는 기름 냄새가 막걸리를 마구 흔들어 잔이 넘치도록 그득히 콸콸 따른다.

 

 

▲ 막걸리 한잔과 곁들이면 더욱 구수함이 느껴진다.

 

살을 찾아 이리 바르고 저리 바르고 하면서 젓가락 전쟁을 하면서 전을 먹으랴 막걸리잔 비우랴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아가미쪽 뼈를 하나 들고 입에 넣어 쪼옥 쪼옥 옴크려 혀로 발라 먹어 본다.

비록 시장이지만 좋은 식용유와 알맞은 온도는 동태머리전을 한복 입은 새색시마냥 이쁘게 단장을 하였고, 구수한 냄새는 달콤한 황진이의 분 내이리라.

보드라운 부침옷의 첫 입술 촉감에 혀에 걸리는 쫄깃한 동태머리 살은 쿵짝 쿵짝 장단이 절로 맞아 흥이 난다.

한 잔 술에 시름을 펴고, 젓가락 누비던 동태머리 전에서 답을 찾아 응하여 답하니 이 어찌 멋진 시가 아니리오, 이 어찌 시인의 제1의 안주라 하지 않으리오.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었다.

 

 

 

 

부족한 듯 메뉴판을 돌아보니 동태에 갈비가 있단다. 가난한 빈농의 삶을 이야기하는 춘천 닭갈비, 도시 노동자들의 애환 고등어의 고갈비는 익숙한데 명태갈비는 또 금시 초문이다.

웃자고 명명한 것이지만 육고기든 생선이든 뼈에 공생하는 살이 맛있는지라 주문을 해 본다. 동태머리전에 비해 살이 조금 더 많고 발라 먹기가 수월해 동태살 본연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즐기기가 좋았다.

살을 한참 발라먹고 남은 길쭉한 뼈 등사이의 살을 젓가락으로 쭈욱 쭉 밀어 올려 모으니 딱 안주 한 점이다. 어렵게 정성으로 모은 이 한점은 앞에 쉽게 먹었던 살들의 맛과 향의 감촉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위가 소란하여 뒤돌아 보니 남자 사장님이 시장내 죽 집에서 냉 콩물을 한 양푼 사오셨다. 여사장님은 국수를 삶고 남자 사장님은 앞집아저씨, 뒷집 아줌마, 옆집 새댁을 불러 모았다.

 

▲ 순천 아랫장에 있는 전 전문점

순식간에 동네 상가 잔치가 이루어졌다. 웃으면서 마시는 시원한 냉 콩물에 그들의 시름이 씻기고, 젓가락에 휘휘말려 그들의 입속에 감기는 국수에 그들의 근심을 삼켰다. 그 들은 그렇게 웃으면서 지냈다.

미처 바깥에서 보이지 않아 알아보지 못했던 삶의 공간이었다. 비록 장 날이 아니라 시끌벅적하게 소란스러움은 없었지만 그 안에서는 지난 장날을 정리하고 오는 장날을 준비하는 서민들의 준비하고 함께하며 의지하는 삶이 있었다. 이러한 정리와 준비가 있었기에 장날은 우리에게 더 많은 볼거와 살거리 먹거리가 주어 지는 것이리라.

 

노래 같지도 않은 소재와 노래를 오 현명이라는 훌륭한 성악가가 해학과 풍자를 넣어 국민의 가곡을 만들었듯이 조용한 그들의 준비하는 삶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과 기쁨을 준다.

웬지 서글퍼지거나 그냥 웃음이 나오는 날 순천 아랫장에 들러 아무집이나 문열고 들어가서 명태머리전에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고 나온다면 우리 삶은 어느 순간 정리되고 준비되어 있으리라.

 

▲ 순천 아랫장에 있는 전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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