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탐방] “학교에서 무엇보다 문학, 역사,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학이 무엇입니까? 인식론적 기반에서 논리학을 도구로 삶과 세계에 대해 자신만의 주체적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잖아요.”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다. 최첨단 IT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기업의 대표가 역사와 문학의 가치를 말한다. 컴퓨터 산업의 첨단의 이미지와 묵은 이미지인 고전의 매치가 선뜻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의사소통의 벽을 열게 하는데 문사철의 덕을 본다며 정 대표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강조했다. 

◇인문학적 감수성을 이야기하는 사장

(주)보고정보 정경진 대표를 1시간을 기다리고 만날 수 있었다. 한참 바쁠 때라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얼었던 몸이 녹았다. 정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문사철(文史哲)로 말문을 열었다.

“중국집 주방장이 요리하는데 영어 쓸 일이 없잖아요. 학교에서 영어, 수학은 몰아내고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는 인문학을 가르쳐야죠. 지금은 역사를 모른다고 지탄받지는 않지만 영어 못하면 지탄받는 시대에요.”

영어, 수학을 없애야 한다는 말은 다소 급진적이라고 생각됐지만 그만큼 인문학의 가치를 강조한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정 대표의 이력을 봤다. 광주 카톨릭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했다. 사회에 나와 건축기사 자격증을 따서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다 2000년에 지금의 회사를 꾸리게 됐다. 대학전공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제대로’ 전공 공부를 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제가 사업을 할 때 전공 덕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제가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편인데 그 때문인지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돼요. 의사소통이 잘 된다는 것은 마음의 벽이 열리고, 무너진다는 뜻이거든요. 제가 문 열라고 대포를 쏜 것도 아닌데 따뜻한 햇볕에 저절로 옷을 벗는 것처럼(사람들과 소통이 잘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업에서도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정 대표는 사람과의 관계를 원활하고 우호적으로 만드는 힘을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는 원인을 자신이 공부한 인문학적 감수성으로 돌렸다. IT사업가가 인문학인 문사철을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정 대표가 이끄는 보고정보는 어떤 곳인지 새삼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 내의 인재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현실에 정 대표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맹모삼천지교 정신으로 만든 기술과 인재의 보고

보물(寶) 창고(庫), 정보의 보물창고.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객들에게 안성맞춤인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미에서 지은 사명, 보고정보다. 현재 순천시에 본사를 두고 20명의 직원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며 연 매출 30억원을 올리고 있다. 간략하게 회사정보를 들었다.

▲보고정보는 지금까지 기술개발능력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전남도지사 등으로부터 표창 받았다.

“한때는 서울과 광주에 법인을 두고 본사 직원까지 모두 70명의 직원이 근무했습니다. 4대강 사업의 여파로 할 수 없이 (직원을)감축하게 됐습니다. 저희 회사의 주된 고객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인데 (지자체)예산이 전부 4대강 사업에 투입되면서 정보화사업 예산이 삭감돼버렸어요.”

보고정보의 고객처를 보니 전남·북도청을 시작으로 광양시, 익산시, 부안군 등 전라남북도 시군의 홈페이지 구축에서 운영까지 폭 넓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인원 감축이 있기 전 2008년도의 매출 그래프는 40억원에 달해 있었다. IT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4대강 사업의 위력을 실감했다.

방향을 틀어 서울과 광주에 법인을 둔 까닭을 물었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답했다. 선문답이 아닐 수 없다. 지역 내의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로 대학진학과 취업을 위해 떠나버려 지방에 ‘인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지 오래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순천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서울로 발을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발로 뛰며 구한 인재들과 같이 이번에 한 건 터트렸다.  

▲2010 전국 지자체 합동평가 우수사례 공유확산 컨퍼런스에서 최우수 사례로 선정된 디지털영농상담시스템. 보고정보가 개발해 익산시에 제공했다.

“지난달 24일 무주에서 전국지자체 합동평가 우수사례 컨퍼런스 대회가 열렸는데 익산시가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어요. 최우수 사례로 뽑힌 익산시의 프로그램을 저희 회사가 구축, 제공했습니다.”

말하는 정 대표의 음성이 조금 올라갔다. 보고정보가 익산시에 제공한 ‘디지털영농상담시스템’이 전국 지자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수사례를 발표하고, 좋은 사례에 대해서는 공유, 확산시키는 대회에서 최우수 사례로 뽑힌 것이다.

고객정보와 과거 상담이력과 같은 상담내용을 데이터베이스(DB)화 해 상담 직원이 바로 상담에 들어갈 수 있고, 직원이 교체돼도 연계상담이 가능한 점, 또한 농민들이 각자의 컴퓨터를 통해 농업상담을 지원 받을 수 있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수상을 계기로 전국의 농업관련 유관기관 등 전국에 프로그램이 보급될 전망이라고 한다. 매출액은 250억원을 예상했다. 정 대표의 ‘맹모삼천지교’ 정신이 빛을 발한 때다.

정 대표는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인심 쓰듯 보고정보의 사업 분야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공공 SI(System Integration,시스템통합)사업, 농업IT사업, 디지털 콘텐츠사업이다.

전남도청 등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이 공공 SI사업에 포함된다. 지난 영암 F1대회 때 모바일을 통해 숙박, 교통 정보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제공한 것도 여기에 속한다. 농업IT사업에는 최우수사례로 뽑힌 프로그램인 디지털 영농상담 시스템을 비롯 원예시설 환경제어 시스템 등이 있다. 원예시설(비닐하우스 등)의 습도, 온도, 일사량 등을 자동적으로 체크해 최적의 환경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원예시설 환경제어 시스템의 개념이다. 

▲정 대표는 농업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농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꿈을 말했다. 사진은 원예시설 환경제어 시스템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정 대표는 그쯤에서 설명을 멈추었지만,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이 현대인의 삶 깊숙한 곳으로 자리잡은 시점에 현재 구축중인 모바일을 통해 이용 가능한 'u-남도여행 길잡이'와 같은 프로그램도 남도의 멋과 맛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서비스가 될 것 같았다.

“우선 (회사를)상장 시키는 것이 제일 큰 꿈이고, 농업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농업을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역 내 우수 인재가 머무를 수 있도록 지역의 우량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전라남도에서 IT사업체의 수를 다섯 손가락으로 꼽아도 몇 손가락이 남는 현실 속에서 정 대표는 보고정보를 상장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농업과 지역을 생각하는 소박하지 않은 큰 꿈이 있었다. 사장이라면 누구나 꾸는 꿈을 가지고 있고, 사장이면서 아무나 꾸지 않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 중 내내 연잎차를 우려 내주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잊지 않은 배려는 늦은 밤 피로마저 풀리게 했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경박하지 않는 태도와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음성은 누구나 꾸는 꿈과 아무나 꾸지 않는 꿈 사이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인문학적 감수성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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