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여수 금죽도 김채봉 씨 부부
[여수/남도방송] 여수 돌산의 외딴섬 금죽도. 한 노부부만이 사는 이 섬은 여수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안에 위치해 있지만, 토박이조차 잘 알지 못하는 섬이다.
지난 2005년부터 여수 금죽도에 정착한 김채봉(70)‧정순희(66) 씨 부부는 이 섬에서 소박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섬 곳곳에 꽃나무도 심고, 섬을 가로지르는 둘레길도 만들면서 섬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단 한 가구만 사는 이 섬. 부부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란 김 씨는 젊은 시절 시내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아내 정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지난 2005년 직장을 접고 아내와 함께 입도했다.
중년의 나이. 섬 생활이 그리 호락하지 않을터인데 성인이 된 아이들은 부모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부부의 뜻을 존중했다.
사실 김 씨는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이 섬에서 나고 자라면서 고향과 늘 삶을 함께해 왔다. 금죽도 역사의 산증인이자 파수꾼인 셈이다.
“제가 나고 자란 섬이라서가 아니라 섬 전경이 너무 이쁘고, 아담해요. 누군가 섬을 아름답게 가꾼다면 지역의 또 다른 관광명소가 될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마치 통영 외도나 고흥 쑥섬처럼 섬을 꽃과 나무의 섬으로 가꾸겠다는 포부다.
김 씨 부부에겐 0.5톤 FRP선 한 척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뭍에 나가 생필품을 사 오거나 식구들을 섬으로 데려오는 자가용이나 마찬가지다.
또, 없어선 안 될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김 씨 부부는 인근 바다에 펼쳐놓은 이각망으로 전어·도다리·노래미·숭어 등 생선을 잡아 시내 횟집 등에 판매하고 있다.
소박한 생활에 욕심내지 않고 자연에 동화하면서 말그대로 ‘안빈낙도’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 섬의 자랑거리는 물이다. 흔히 섬에선 식수가 부족한데 이 섬에는 3개의 우물이 있어 물부족 걱정은 없다. 물맛이 좋아 주변의 양식장에서 와서 물을 퍼 갈 정도라고 한다.
지하 85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는 섬에서 꼭 맛봐야 하는 명물이다. 아내 정 씨가 이제 막 퍼 올린 암반수를 컵 가득 담아 내온다.
“쭉 들이켜보시고, 청량감을 느껴보세요. 시중에서 파는 어떤 생수와도 비교가 안 될 겁니다. 밍밍한 맛이 아니라 입안을 휘몰아치는 느낌, 무언가 살아있는 맛이란 표현이 정확할 거에요”
금죽도의 지명 유래는 섬에 대나무가 많아 멀리서 보면 금빛이 나 '금죽도'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곳에서 난 대나무는 화살을 만들기에 적합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만들어 왜구를 소탕했다는 설이 있다. 대나무 품질이 좋기로 소문나 왕실에 조공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현재 이 섬에 대나무는 거의 없다.
이 섬은 해안선 길이가 1.6km 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섬이지만 한때 50여 명의 주민이 북적거리며 살았다.
지난 2011년 작고한 아버지는 해방 전 금죽도에서 태어나 군 복무와 자녀 교육을 위해 잠시 섬을 비운 것 외에 섬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씨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집터는 과거 주막이었다고 한다. 바다 노동에 지친 뱃사람들이 들러 막걸리를 들이켜곤 했던 아련한 옛 기억은 격세지감을 불러온다.
금죽도는 그의 삶에 있어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그는 곰곰히 생각한 뒤 답했다.
“금죽도는 저에겐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위로하고, 앞으로 삶을 제시하는 일종의 등대라고나 할까요.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나고 자란 섬이 무인도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여수의 보석섬이 되도록 더욱더 가꿔 나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