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지도로 순천만갯골 디자인 착안
엄동설한에 튤립 150만본 식재 기억 '생생'
작업자 구인난에 새싹 뜯어 먹는 새와 전쟁
인연 있던 주변인 나서 도움 준 것에 '감동'

[순천/남도방송]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장 40일만에 관람객 3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꽃과 탁트인 잔디광장, 색다른 체험공간은 입소문을 타며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순천은 국내외 도시와 기관단체 벤치마킹 성지가 됐다. 박람회 흥행몰이에 직원들은 폐장 이후를 준비하며 분주한 모습이다. <남도방송>은 박람회 성공을 이끈 숨은 공로자를 찾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퇴직 후 풍덕경관정원을 찾은 김혜령 팀장
▲퇴직 후 풍덕경관정원을 찾은 김혜령 팀장

◇ '순천만 갯골' 담아낸 풍덕경관정원

김 팀장이 경관농업팀장으로 발령을 받아 현장을 살피러 온 지난해 7월 풍덕들은 물이 가득 찬 논에 잡초가 무성했다. '과연 이곳에 꽃을 심어도 될까'하는 걱정과 우려로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 

걱정만 할 수 없었던 그는 곧바로 배수로를 설치해 논에 가득한 물을 빼내기 시작했고 보름이 흐른 뒤에는 들에 버려진 200톤 상당의 농업폐기물 정리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듯 풍덕들을 정비하면서 여름이 지나갔고 10월부터는 논을 갈아엎는 로터리작업에 들어갔다.

김 팀장은 관람객들이 경관정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꽃잔치에 빠져드는 기쁨을 주고싶었다.

이곳도 도심을 연결하는 정원 기능과 역사성까지 담아내고자 100년 전 지도를 보고 옛 모습을 담은 순천만 갯골 디자인을 생각했다. 

갯골은 1번부터 33번까지 33개를 만들었다. 첨단기술을 도입해 GPS로 좌표를 찍어주면 능숙한 굴착기 기사가 장비를 이용해 골을 만드는 방식이다. 

김 팀장은 갯골 만들기 작업에 참여한 지역 중장비 기사들의 장비 다루는 솜씨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기사님들은 정말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며 "말만 하면 능숙하게 둥근 갯골 형태를 척척 만들어 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하나의 갯골은 평균 4~6m 간격으로 배치했다. 각각의 갯골은 일곱 색깔 꽃들을 번갈아 심어 다채롭게 조성했고, 관람객이 다니는 관람로는 배수구 기능을 하도록 했다.

갯골에는 총 150만본에 달하는 튤립 구근을 식재했다. 나비 모양의 꽃인 '비올라'와 '리나리아' 등 색깔 꽃 53만4,000본으로 경관정원을 채웠다.

구근이 식재 되기전 경관 정원 앞 '팜라운지' 실내 330㎡(100평)에는 500개들이 구근 박스가 실린 팔레트 150여개를 가득 보관하기도 했다.

◇ 촉박한 시간에 인부는 오지않고··· 눈보라 속 식재작업 

갯골 조성 작업 후 튤립 구근 식재작업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27일까지 2주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작업에는 김 팀장을 비롯해 직원, 인부들까지 130여명을 집중 투입했다.

하지만 계절적 요인 탓에 어려움도 많았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23일에는 순천에 역대급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지자 땅이 얼기 시작했고 작업팀은 눈보라 속에서도 땅을 파고 알뿌리를 심었다.

더 큰 문제는 한 겨울 인력 수급이었다. 튤립 식재인력 중 상당수는 외국인 노동자로 채웠으나 날씨가 추워지면 이들이 작업장에 나타나지 않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구근 식재를 마쳐야 했던 김 팀장은 작업자를 구하기 위해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인부를 찾아야했다.

튤립을 심기 전 지난해 11월 29일과 식재 후인 1월 13일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언땅을 파고 손을 녹여가면서 튤립을 심은 경관정원은 물에 잠겼고, 그야말로 들판이 저류지가 되며 김 팀장과 경관농업팀 애간장을 녹였다.

김 팀장은 "튤립을 심기 전엔 과연 꽃을 심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심은 뒤엔 뿌리가 얼면 어떡하나, 뿌리가 얼면 꽃이 필까 걱정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 팀장은 "며칠 전 튤립 구근을 분양했는데 아마 외국인 노동자들이 심은 튤립은 쑥쑥 잘 뽑혔을 것"이라며 "우리 어머니들은 가르쳐준대로 땅 속 깊이 알뿌리를 심었지만 그분들(외국인 노동자)은 그렇치 않은 경우도 많아 그렇다"고 미소를 지었다.

▲튤립 등 화려한 꽃으로 색칠된 풍덕경관정원 (사진=순천시)
▲튤립 등 화려한 꽃으로 색칠된 풍덕경관정원 (사진=순천시)

◇ 어려울 때마다 참여해 도와준 귀인들

어려운 점은 이뿐 아니었다. 1월 풍덕들에 파종한 유채 싹이 나자 청둥오리 등 야생 조류가 경관정원으로 날아와 싹을 먹어치웠다. 

김 팀장과 직원들은 오후 5시가 되면 들에 나가 오후 9시까지 오리 퇴치 작전을 벌였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시민도 '오리와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몇 마리에 불과했던 조류는 수십, 수백 마리로 늘어났다. 야생 오리들은 순천만습지 등에서 조사료가 사라지자 풍덕들로 날아들어 유채 잎을 뜯어먹으며 개체 수가 급증했다.

팀 단위 순찰직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농업기술센터 직원과 주민까지 동원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경관팀은 유채단지 16㏊를 방조망으로 덮어씌웠다. 

김 팀장은 "어려울 때마다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줬다"며 "그동안 좋은 인연이 있던 분들이 경관정원 자문으로, 기술 지도로, 민원 해결 등으로 도움을 줬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도움이 이어진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했다.

그는 "경관정원 마무리는 내 손으로 하고 싶었고, 내 인생의 마지막 꽃과 같은 역사적 공간이 됐다"며 "농촌지도사 업무와는 많이 다른 이곳에서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었고 퇴직할 때까지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작은 소망은 그동안 배운 지식을 이웃에 나누는 것이다. 김 팀장은 "퇴직 후 비로소 진정한 농부가 됐다. 집이 있는 승주읍 신전마을에 살면서 농사와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며 "그동안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을 주변인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지정운 기자 zzartso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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