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에 만나는 뜨끈한 아랫목 밥상

[맛집/남도방송]날씨가 제법 매서운 손짓으로 속을 드러낸다.

12월이 되었음에도 제법 따스한 날씨가 계속되어 추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산으로 들로 아름답게 채색된 자연을 만끽한다.

‘샛노란 은행잎이~~ 강물에 흐른다고~~~, 새빨간 단풍잎이~~ ’

찰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를 흥얼거리며 내달리고, 물위에 전신을 맡긴 채 하늘 구경하며 유유자적하는 단풍의 세월놀이를 바라본다.

적당히 다이어트 하여 군살 없이 탱탱한 모습으로 강바닥의 예쁜 돌 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물위에 나뭇잎하나 띄워 송사리의 눈부심을 지킨다.


아무런 욕심 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며 만드는 조화의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쪼그려 앉는다.

어느 순간 한기를 온 몸에 받는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몸을 후끈 달굴 수 있을까?

따뜻한 아랫목에 엉덩이 붙이고 팔팔 끓는 뚝배기 청국장에 밥을 쓱싹 비벼 볼까나? 가자!

알차고 깔끔하게

차츰 남도의 음식문화가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러 가지 나물에, 탕에, 볶음에 상다리가 휘고 상 위에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의 가지 수로 접시를 포개어 놓고 마치 2첩이니 3첩이니 해서 상차림을 왜곡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먹을 만큼의 양으로 가지 수를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푸짐하게 잘 먹었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하는 상차림을 추구한다.

장독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백반 집과는 달리 김치에 나물 몇 가지로 상차림이 간결하다.

하지만 간장게장, 양념게장, 생선구이, 김으로 결코 상차림이 초라하지 않다.

널찍하게 자리한 다 큰 처녀의 허벅지만큼이나 도톰한 갈치구이에, 늘씬하고 새침한 모양으로 반듯이 누운 고등어, 크지도 적지도 않지만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려는 조기까지 뜨거운 철판위에 부끄러운 듯 양념 옷을 입었다.

조금은 싱거운 간 맞춤이 양념을 만나니 제격이요, 까무잡잡함에서 은은히 솟아오르는 하얀 속살들은 침을 가득 채운다.

갈치에 한 수저, 고등어에 한 수저, 조기에 한 수저 밥이 벌써 많이 비워진다.

연한 갈색의 옷을 입고 깊숙이 깊숙이 자리한 노오란 보드랍고 감칠 맛 나는 속살이 밥 몇 숯 갈을 거들고, 매콤담백한 빨간 옷의 양념게장이 밥을 또 도둑질한다.

간장의 유혹에 맨 밥에 쓱싹하고, 김에 밥을 얹고 간장을 더하니 또 밥이 가네.

어쩔끄나, 뚝배기 청국장이 이제 보글거리며 나오는데......

‘ 밥 한 공기 추가요~~’

밥상의 화룡점정, 청국장

바글바글 포삭포삭 들끓임 소리에 숨 한 번 죽이고, 노릇한 황색자태에 끈적한 품새가 입맛을 돋운다.

앞 접시에 국자를 푸욱 집어넣고 내용물 검증에 들어간다.

커다란 콩에 걸죽하게 국물을 만들었고 애호박, 버섯이 함께하며 청국장의 d백미 새하얀 두부가 촘촘히 놓여있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에 은은함이 깃들었고, 걸죽함에 쫀득함이 느껴지는 맛에는 담백함에 고소함이 배었다.

뜨끈한 밥 위에 다시 한 국자를 푸욱 떠서 끼얹는다.

쓰윽 스윽, 비비고 말고 저어서 숟가락 키 너머로 밥을 담는다.

집채만 한 밥이 입안으로 장마철 산사태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밀려드니 입 안이 이쪽저쪽으로 정돈하느라 무척이나 바쁘다.

걸죽한 국물이 밑자리를 잡고 커다란 콩들은 이빨에 부딪혀 밥알과 섞이고 야채며 두부는 간을 맞추고 맛을 조절한다.

깊은 목젖에서 쭈욱 들이미는 청국의 묘한 매력이 코끝으로 내뿜어지고 그 녀석은 또 다른 숟갈을 재촉한다.

청국장을 잘못 띄우면 표면이 미끄덩거리기 일쑤고 속은 약산 비릿함이 남는다.

바실러스균의 미끄러움과는 다르다.

발암물질을 감소시키고 유해물질을 흡착하여 배설시키는 기능이 있는 바실러스균은 공기 중에도 많이 있지만 따뜻한 기운의 성향을 지닌 볏짚에 특히 많아 청국장을 띄울 때 볏짚을 사이사이에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따끈함의 기운이 내 뱃속의 단전에 차분히 자리한다.

온 몸이 후끈해진다.

이제야 방바닥의 따듯함도 느껴진다.

참으로 묘한 먹거리다.

밥상은 배가 불러야 잘먹었다는 소리한다.

우리나라는 식사시간을 밥 때라한다.

밥 때라는 말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미식적인 개념 보다는 일을 하다가 허기진 배를 채워야하는 의무적인 성향을 표현하는 어쩌면 약간의 서글픔이 맴도는 단어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의의 전성이 이루어져 식사시간을 일컫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직업적이든 아니면 업무적이든 의무적으로 먹어야하는 상황 내지는 업무가 아니고서는 일반적인 식사시간에 사람들은 허기를 느끼게 된다.

허기를 느꼈을 때 가장 커다란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배부름이다.

‘배부르고 등따수운데 세상 부러울게 뭐 있을까?’

우스게 소리가 아니다.

격식이 갖춰진 고급레스토랑에서 멋진 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에 뭐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성 싶었는데 뭔가 허전한 맘에 라면이라도 한 봉지 끓여 본적이 있지 않은가?

포만감과 배부름은 다르다.

건강이다 웰빙이다 하며 소식을 권장하고 운동을 외치지만 그래도 가끔은 골마리(바지를 매는 끈) 한 번 풀어 헤치고 맘껏 먹어 보는것도 일탈의 맛이리라.

이런 일탈을 원하는 이 들에게 장독대를 감히 권한다.

신선한 반찬에 생선, 간장게장, 양념게장에 김, 청국장까지 어느 하나 밥도둑 아닌게 없다.

그들과 어울려 밥을 실컷 도둑질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떤가?


음식점정보: 광양시 중동 1382-4번지, 061)792-0079, 게장, 청국장, 생선구이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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