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남도방송] 한창진 = 여수시민들은 지난 15년 동안 그토록 매달려왔던 세계박람회를 개최해놓고서도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박람회를 개최하기 전까지는 박람회만 열리면 여수가 활기찬 도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정부가 1조원 이상을 들여 만든 박람회장이 언제 열릴지 모른 채 문이 굳게 닫혀있다. 여기에다 대선 결과에서 겪은 지역적 한계가 한 몫을 더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형 공무원 비리 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몇 십만 원을 횡령해도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텐데, 8급 기능직 공무원이 3년 동안 천문학적인 80억 7천 7백만 원이라는 공금을 횡령하였다. 한 술 더 떠 현직 경찰관이 강도범과 함께 금고를 터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버젓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시민들은 박람회를 준비하느라 어수선한 사이 어느 공무원은 도둑질을 한 것이다.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똑같은 비리 사건에 대한 당국의 처리 방식이다. 박람회 준비와 치안 질서 유지에 공로가 많았다는 평가를 받은 여수경찰서장은 소속 직원 감독 소홀로 즉각 대기 발령을 받았다. 담당 과장과 직속상관 파출소장도 마찬가지로 대기발령이다.

이에 비해 여수시장은 시장을 대신해서 여수시 공금 곳간을 맡은 공무원이 시민의 혈세를 도둑질을 했는데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라 사건 발생 이후 시민이 이해를 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도 감독을 소홀히 한 결재 라인에 있었던 공무원이나 내부 감사에서 발견을 못한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시장은 80억 공금 횡령 사건을 단순 개인 비리로 처리한 결과이다.

그래서 시장은 사건 이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중국과 터키,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 시민들을 더 울분하게 만든 것은 시장의 기자회견문이다. 여수세계박람회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지 못했는데, 시장의 꿈 이야기는 1위를 차지하였다. 시민들과 출향 인사들은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횡령한 공금 80억을 환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루한 소송을 통해서 건질 재산도 많지 않다고 한다. 대안으로 변상을 위한 구상권 행사 또는 도의적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책임 선 상에 있던 부시장이 아무런 인사 조치도 없이 전남도의 1월 1일자 인사에서 도청 국장으로 전보되었다. 마지못해 계속되는 분노하는 시민들의 계속되는 촛불집회 이후 비리 공무원 상관인 당시 경리팀장을 대기 발령 시킨 것이 유일한 인사 조치이다. 아마도 2013년 정기 인사에서 나머지 관련 국장과 과장, 팀장들도 자리만 옮길 것이 뻔하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경찰서와 시청이 이렇게 다른 조치를 한 이유는 시장은 선출직이라는 것이다. 정무직인 시장은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자격 상실형 판결을 받거나 주민소환을 받지 않고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소환은 제도가 실시된 이후 지금껏 3분의 1이 투표를 한 적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그래도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시장을 비롯하여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행법으로는 자치단체장이 지방자치법 제105조에 따른 지휘 감독 소홀과 운영 과실로 인한 피해를 입혀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이 나서서 ‘주민 소송’이나 ‘직무 정지 가처분 소송’ 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가진 제왕적 단체장이 공무원과 함께 독선과 독주를 해도 시민들은 아무런 제재를 할 수가 없다. 다음 선거 때까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것을 알고 있는 단체장은 물질적 책임은커녕 도의적 책임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직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빠른 망각을 믿고 변함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을 방지하고,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 보완해야 한다. 또, 주민 소환 투표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

관선 시대 같았으면 부하 직원이 80억원을 횡령을 했는데도 꿈에서나 알았다면 여수 시장은 당장 파면감이다. 관내 산불을 막지 못했다고 징계를 당했던 것처럼 연대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각각 다른 조치로 시민들이 더 이상 행정 불신을 갖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이제 분노하는 시민들은 시민 혈세 80억 원을 채워 넣기 위해 시장과 관련 공무원, 시의원, 결산검사를 한 위원들에게서 환수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체 ‘시민혈세 80억 환수운동본부’를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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