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 분향소 설치, 시민들 분향 줄이어

 가슴 아픈 기억,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 세월호가 4월 16일 2주기를 맞이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날의 사고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청해진 해운에 운영하는 여객선 세월호는 당초 2014년 4월15일 오후 6시 30분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짙은 안개로 오후 9시에 출발했다.

 세월호 안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 교사14명 , 선원26명 등 459명과 차량 180대 잡화 등 화물 3천608톤을 싣고 인천에서 제주로 출발했다.

 사고 발생은 다음날 오전 8시48분 세월호는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뒤 오른쪽으로 다시 5도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데 갑자기 140도에서 150도로 10도가 급격하게 돌았다.

 8시52분 단원고 최덕하 학생은 전남 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고 신고해 174명을 구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 9시 23분 진도 VTS, 세월호에 탈출 지시를 하지만 세월호는 방송이 불가능 하다고 했고, 이후 38분 배안에 서는 “구명등의 길을 확인하라”는 방송만 나왔다.

 9시27분 해경 헬기 B-5113대는 초기에 선체 안과 밖에서 승객35명을 구조하고 구명 뗏목 1개를 투하했다.

 학생들은 헬기 소리에 “살았다”고 안도하고 선내에서 기다렸지만, 헬기로 투입된 항공 구조사들은 선체로 진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해경 헬기 3대가 1시간 동안 구조한 인원은 35명이였다.

 9시 30분 사고지역으로부터 20~30Km 떨어져 조업 중이던 어선 20여척은 구조 요청을 받고 즉시 조업을 중단하고 사고해역으로 탑승객 구조에 나섰다.

 9시 31분 안전 행정부는 청와대 국가 안보실 위기 센터장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상황을 알렸다.

 9시 32분 해경경비함 123정은 세월호가 약 50도 정도 기울어진 뒤 현장에 도착해 조타실 쪽으로 향했다. 이후 123정은 구조에 성과는 거의 없었다.

 9시 46분 선원 등은 승객 구호 지시를 묵살하고 이준석 선장을 포함한 자신들만 탈출했다.

 9시 50분 해경 123정은 승객 80명을 구조했다.

 9시 54분 세월호가 64도 이상 기울며 좌현이 완전 침수됐다.

 10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활용해 단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결국 세월호는 침몰했고 중대 본부는 다음날 오전  1시30분 6명이 숨지고 290명이 실종됐으며 179명이 구조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그 후 총 승선 인원은 다시 475명으로 수정되었다.

 세월호는 이렇게 침몰했고 우리의 안전 불감증과 위기 대응능력은 크게 훼손되었다.

 아직까지도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추모 열기는 전국을 확산 되었고, 2주기를 맞는 현재도 세월호에 대한 의문과 인양되지 못한 싸늘한 주검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올해 7월쯤 인양 예정인 세월호의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고 국민들의 슬픔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2주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시민단체들은 분향소를 설치하고 그 날의 아픔과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하고 있다.

 

                                                                                           남도방송       강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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